❝언제나 준비된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⑶외향 및 성격
밝은 금발은 단단하게 틀어올려 한 올의 잔머리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귓바퀴 앞쪽으로 약간만 흘러나왔을 뿐, 허리를 넘는 길이의 머리카락은 둥글게 매듭지어져 정수리보다 약간 뒤쪽에 묶여 있다. 매일 아침과 자기 전, 꼼꼼하게 빗질해서 매만진다. 단정하게 빗어내린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눈썹을 살짝 가린다. 보기 좋은 반달형으로 휘어진 눈썹은 모발보다 약간 짙은 금색. 긴 속눈썹 아래로 새파란 눈동자가 또렷하다. 굳은 의지, 혹은 고결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듯한 눈빛. 오른쪽 눈 아래 작은 눈물점이 하나. 얼굴은 갸르스름하고, 턱이 조금 뾰족하다. 귀에는 비교적 수수한 귀걸이 한 쌍을 매달았다. 그 외의 장신구는 없다. 반지도, 목걸이도.
입술은 보기 좋은 분홍빛. 화장을 짙게 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테가 없는 둥근 안경을 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할 때. 수업을 할 때에도 안경을 착용하곤 했다.
허리가 유독 잘록해 보이는 것은 단정하게 동여맨 의상 덕분일 것이다. 흰 셔츠를 치마 안쪽으로 넣어 깔끔하고 흐트러짐 없는 의복을 갖춘다. 약간의 프릴 장식이 달린 흰 셔츠에 다리가 드러나지 않는 롱스커트를 주로 입으며, 언제나 스타킹을 신는다. 스커트의 길이는 아무리 짧아도 무릎을 반드시 가린다. 손발은 작은 편. 다리는 긴 편. 섬세한 작업에 어울릴 법한 가느다란 손가락과, 잘 다듬어진 손톱. 한 군데 흠 잡을 곳 없는 차분하고 정결한 모습.
항상 자세가 곧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어깨를 약간 뒤로 젖힌 고고한 자세를 유지한다. 전체적으로 작고 여린 체구이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어디에서든 얕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굳게 새기고 있다. 턱을 조금 위로 들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모습이 기본 자세. 가정교사라는 직업이 콧대 높은 귀족 자제분들을 주로 상대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기선제압이나 첫인상에서 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걸음걸이는 단정하고 또렷한 구두 소리를 낸다. 또각거리는 구두는 그리 높지 않은 단화. 척 보기에 수수하고 깔끔한 이미지. 한여름에도 팔다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벌이에 비해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기에, 특별히 사치품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저렴한 편의 향수를 애용한다. 은은한 수선화 향기.
올바름, 도덕적, 정결함, 모범적인. 그러한 수식어에 걸맞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스스로의 모자란 점부터 갖추어 채워야 하는 법이다. 흠 잡을 곳 없는 단정한 용모와 말투, 완벽한 발음과 빈틈없는 행동거지. 그대로 영국에 머물러도 좋았겠지만, 리사는 추억을 모조리 놓아 두고 달아나듯 떠나왔다.
……슬픔 가득한 이곳을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거야. 미안해요, 아버지. 아직도 레이첼의 미소가, 손길이, 그 다정한 목소리가 선명해요.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미신, 괴담, 뜬소문 따위로 생각해 왔다. 실제로 인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적잖이 놀랐지만, 그뿐이다. 그레이트 니케 호에도 별다른 생각 없이, 호주로 가는 가장 빠른 배편이라는 이유로 선택했다. 최대한 빨리 레이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떠나고 싶었기에. 여기 이곳에 두고 갈게. 아픈 기억을 남기고 나는 그냥, 갈게. 그래도 되는 걸까. 나는 달아나는 걸까…….
일기를 매일 쓰지는 않는다.
⑷기타란
④선승법 : 선승객
가정교사. 이름 있는 귀족들의 자제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스물 한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한푼 두푼 알뜰살뜰 모아 둔 돈으로 1등석 티켓을 샀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희망하며. 묵은내 풍기는 아픈 기억을 휘발시킬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바라며. 약간의 사치는 괜찮겠지. 한 번 뿐일 텐데. 그런 생각으로 과감하게 모아 둔 돈을 아낌없이 썼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2등석을 살 걸 그랬다고 짧게 생각했지만, 잠깐이었을 뿐이다.
짐은 많지 않다. 약간의 의복과 책 몇 권. 필기구, 낡은 일기장 하나. 손때 묻은 안경집과 향수병 두 개. 낡은 담요 한 장과 꽤 넉넉한 여비.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주신 목걸이는 언제나 부드러운 천에 싸여 트렁크 가장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다. 착용하지 않는다.
⑸관계란
― 카를로타 노버트. 세상에 하나뿐인 언니, 레이첼의 약혼자, 였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행복해하던 언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가장 아리땁게 빛나야 했을 결혼식은 음울한 장례식이 되었고 레이첼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된 건 전부 카를로타 노버트의 탓이다.
당신이 언니를 죽인 거야. 당신 때문에 언니가 죽은 거야.
끝까지 자제력을 발휘해 카를로타 노버트의 얼굴에 대고 그렇게 쏘아붙인 적은 없지만…….
하지만 이곳, 그레이트 니케 호에서 밀항자 신분의 카를로타 노버트를 맞닥뜨린 순간,
리사 실베스터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언제나 사람의 생명이 가장 귀중하다.'
죽었으면 싶을 정도로 미운 남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숨겨준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언니는 여기 없지만, 언니도 당신이 바다에 빠져 죽는 걸 원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장례식 날이 되어버린 결혼식 날로부터 약 반년이 지났지만, 감정은 매일 새롭게 리사 실베스터의 안에서 피어난다.
분노. 원망. 슬픔. 미움. 그리고 동정. 당신도 참 안쓰러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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