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22건 1 페이지
  • 5
    킬러, 약점, 노인, 살인
    2026-03-05

    파과

    5
    완독일 2026-03-05
    키워드 킬러, 약점, 노인, 살인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작가 구병모

    리뷰


    읽은지 꽤 됐는데 기록을 까먹었었다.

    오랜만에 읽은 구병모 작가의 책. 여전히 좋았고, 여전히 신선했다. 생소한 단어들을 많이 써서 신기한 작가 중 한 명.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싶다.

    매력적인 킬러와 그보다 젊은 킬러의 이야기. 청부살인업자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 칼이 무뎌진, 혹은 마음이 생긴. 그래서 더 인간적인.

    사람을 죽여 온 사람이 갑자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기를 계속 바라게 되는 이야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겠지만 청부살인업자는 이미 죽음에 너무 가깝다.

    그리고 이 업계에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실력이 대단함과 동시에 빨리 은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실력으로 증명하면 나이가 많다는 단점을 커버할 수 있긴 하지만

    실력을 녹슬게 한 것은 나이보다는, 마음.

    권선징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남은 사람.


    당장 수상한 사람에게 경동맥이 베일 위기에서 이런 친절하고 다정하며 헌신적인 말투라니.

    조각은 최소한 신뢰를 잃은 채로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은 이 일에 애정이 있었는데, 대놓고 애정이라고 하기엔 이 일의 성격상 좀 뜨악한 표현이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데 대한 집념이나 원년 멤버로서의 집착 내지는 나 아니면 할 수 없단 식의 고집이라고 부르기에도 적절치 않은, 말하자면 탯줄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그것도 간신히 영양을 공급하다 불현듯 아이의 목을 단단히 감아버린 탯줄로, 언제 죽음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입안에 도는 감미, 아리도록 달콤하며 질척거리는 넥타의 냄새야말로 심장에 가둔 비밀의 본질이다. 우듬지 끝자락에 잘 띄지 않으나 어느새 새로 돋아난 속잎 같은 마음의.

    파멸할 때는 사이좋게 손 잡고 지옥으로 떨어져야지 아무렴.

    하나하나 뽑아서 손가락 끝마다 꽃잎이 피어나면 좀 더 예뻐지겠지. 화려해지겠지. 핏빛보다 고운 빨강, 세상에 다시 없으니. 비록 공기에 닿자 거무칙칙해지더라도, 더러워지기에 오히려 깊고 잔혹한 빨강.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은 기억과 호환되지 않는 현재였고 상상에 호응하지 않는 실재였으며, 영원히 괄호나 부재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감촉이었다.

    이거 소질 있네.

    그랬는데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그중 하나는 지금껏 골몰해온 대로 늑골을 다 열어 심장을 꺼내보기 전에는 그 심리를 알지 못할 투우-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묘한 방해 공작에 대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조금 편찮은 정도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장 박사에 대한 안쓰러움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그 느낌은 리어카 노인을 거들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그렸으며, 서로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을 포함하고 있었다.

    "근데 자격은 없지."

    그러나 이 마음은 어디에도 파종할 수 없이 차가운 자갈 위에서 말라비틀어져 마땅할 터였다.

    나를 떼어 보내고 당신 혼자 죽을 작정이라면 차라리 끝까지 함께 가서 지옥에 나란히 떨어지기로. 어차피 우리 모두 조와 아기가 있는 곳에 가기는 글렀으니.

    "그렇게 되면."

    당신을 따라갈까요.

    "너도 나도, 지켜야 할 건 이제 만들지 말자."

    미안합니다. 그건 나 때문입니다. 내 눈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 눈으로 심장을 흘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하나의 존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혼이라는 게 빠져나갔는데도 육신이 더 무거워진다는 것은.

    단지 동전이 바닥났을 뿐인데 조각은 지금껏 형태를 유지해온 자신의 남루한 삶 전체를 비워나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서 미뤄왔지만 이제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가는 일을 더이상 늦출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어떤 심장의 소용돌이들.

    "네가 바로 그 애구나."

    "정말, 기억해?"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 죽은 자로 하여금 (읽는 중)

    출판사 현대문학
    작가 편혜영

    리뷰


    읽는 중.


    의료… 간병에 대한 건가?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묵직하고… 음산하다기보다는 뭐랄까, 음울한 느낌. 

  • 5
    작가, 글, 독자, 살인사건, 추리소설
    2026-05-14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5
    완독일 2026-05-14
    키워드 작가, 글, 독자, 살인사건, 추리소설
    출판사 황금가지
    작가 이영도

    리뷰


    읽을수록 어지럽다. 특유의 설명 안 하고 읽으면서 이해하게 하는 서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래서 이게뭔데 싶어짐. 그래도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된다. 범인이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역시 이영도를 좋아하는구나, 싶어짐.
    읽으면서 점점 이해되는 게 좋음. 범인들의 동기가 다 그럴싸하다. 그리고 다들 기가 막힌다. 이영도는 천재이다.
    천재의 글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빠지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천재들이란… 예상했다면 예상했지만 또 예상하지 못했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유거리들을 던지는 방식들이 유쾌하고 우아하고 세련됐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결국 작가와 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와 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역시 천재이기 때문이겠지. 중간중간 들어간 깨알같은 자기 작품 패러디도 웃겼다.
    이영도 세계관을 잘 알고 있다면 더 즐거운 책. 발췌 문장은 나중에 다시 정독하면서 발췌해봐야겠다. 처음 읽을 땐 도대체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 4
    성차별, 인종차별, 페미니즘
    2026-01-08

    나쁜 페미니스트

    Bad Feminist
    4
    완독일 2026-01-08
    키워드 성차별, 인종차별, 페미니즘
    출판사 사이행성
    작가 록산 게이

    리뷰


    상당히 옛날 책이긴 하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현실에 적용되어야 하는 조언이 많은 책. 페미니즘, 성차별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 문제도 다루고 있어서 좋다. 저자가 흑인이기에 그런 이슈에 더 민감하고 진지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겠지만. 만약 내가 책을 썼다면 나는 아시아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썼겠지. 많은 영화와 드라마, 책을 함께 다루고 있어 그런 것에 대해 박식하다면 더 많이 공감하고 더 잘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건 헝거게임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안 읽었다.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좋은 것 같다. 나는 막 살아도, 끝내주는 커리어 우먼이 아니어도, 눈부신 성취를 하지 않아도, 멋진 몸매를 가지거나 똑똑하지 않아도 그냥 페미니스트. 나도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을 받아보았고,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페미니스트.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여성의 기억력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조언하는 이가 누가 되었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모든 여자들에게 적용되는 단 한 가지 원칙은 없다.


  • 5
    언어, 침묵, 몰락
    2025-06-27

    희랍어 시간

    5
    완독일 2025-06-27
    키워드 언어, 침묵, 몰락
    출판사 문학동네
    작가 한강

    리뷰


    정갈한 언어들이 빚어내는 장면은 고요하면서 격정적이고 단정하면서 맑게 흐른다. 모든 문장이 잘 다듬어져 있고 한 문장 한 문장을 고심해서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정제되고 정갈한 문장들. 희랍어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 아름다운 문자, 죽은 언어, 세련된 문법.
    고요한 언어들이 꼭 노랫말처럼 아름답다.
    두 사람의 궤적이 서서히 겹쳐가는 과정이 두근거린다.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기도 엄청 궁금해지고, 마침내 두 사람이 대화라고 해야 하나... 자신을 표현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순간이 아름답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 들의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접촉.


    아직 세계와 나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당신의 시선이 단지 내 말을 읽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당신에게 입맞추고 싶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 4
    추리, 반전, 미스터리
    2025-06-17

    어두운 범람

    4
    완독일 2025-06-17
    키워드 추리, 반전, 미스터리
    출판사 문학동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

    리뷰


    파격적인 시작, 흥미로운 전개, 깔끔한 마무리. 단편집으로는 꽤 괜찮다. 단편이라서 어쩔 수 없이 마무리가 약간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띠지에 적힌 대로 상쾌할 정도로, 산뜻할 정도로 깔끔한 엔딩. 반전? 이라고 해야 하나 마무리 한 방이 억지스럽지 않고 깨끗하다.
    흥미로운 서술 방식.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산뜻하다. 상쾌할 정도로 진한 검은색 결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괜찮은 복선 회수와 떡밥 회수로 깔끔한 엔딩을 내면서도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네??? 하게 되는, 미스터리의 정석 같은 느낌.


    갇히는 것과 어두운 것은 정말 싫다.
    자살의 이유를 '문학적인 고뇌로 죽었다'라고 하면 그럭저럭 듣기 좋잖아요.
    영혼과 육체를 바치면 보답으로 망각을 주지.


  • 5
    책, 작가, 글
    2025-05-29

    꿈꾸는 책들의 도시

    Die Stadt der Traumenden Bucher
    5
    완독일 2025-05-29
    키워드 책, 작가, 글
    출판사 들녘
    작가 발터 뫼르스

    리뷰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 중 하나. 여전히 너무 재미있다.
    그림자 제왕은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


    미치광이가 되면 사랑하던 망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던가?
    "무시무시한 성에는 어디든 지하실이 있다."
    "어떤 지하실에든 괴물이 살고 있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 3
    정신병원, 우울, 슬픔
    2025-05-08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

    3
    완독일 2025-05-08
    키워드 정신병원, 우울, 슬픔
    출판사 비전팩토리
    작가 이수연

    리뷰


    병원에 입원할뻔한 적이 있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었다. 세상에는 힘든 사람이 정말 많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심각한 사람도.
    그럼에도 나는 자주 생각하는데,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주인공도 여기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주인공도... 그만큼 증상이 심각하고 아픈 사람이었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놓아 버렸지만, 세상에는 그만큼 아프고 혹은 그보다 더 아프고 힘들어도 아무것도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고 싶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고생하고 걱정할까 봐, 미치고 싶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보다는 이 사람들이 훨씬, 행운아다.
    책을 읽으면서 죽음과 자살에 대해 계속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좋지 않은지도.

    "사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거 같은데, 너무 아픈 척하는 거 아니에요?"
    이 행복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나는 사라져야 한다고. 예전처럼, 과거처럼 다시 나는, 불행해질 테니까, 지금 죽어야 한다고.
    나는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뭐 큰일이라고 입원까지 시킨 걸까.
    "언니밖에 없었어요. 고마워요."
    "고흐가 말도 거나요?"
    "인생은 고통이라고요."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완벽한 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용서는 할 수 없어요."
    나를 끌고 가는 것은 슬픔보다 절대적이고 가벼운 아름다움이었다. 그 속에서 나도 같은 존재가 될 거라 생각하면서.
    "그냥 살아만 계세요."
    '자살하고 싶은 생각은 크나큰 위로이다. 그것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끔찍한 밤을 성공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다신 보지 말아요."


  • 3
    사후세계, 천사, 인간
    2025-05-03

    천사들의 제국

    Empire Des Anges
    3
    완독일 2025-05-03
    키워드 사후세계, 천사, 인간
    출판사 열린책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리뷰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다시 읽으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전히 재밌다.
    생각보다 분량이 좀 적은지도. 천사들과 세계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참신하다고 느낀다.
    술술 읽히는 글은 어쩌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었다. 생각보다 짧았던 느낌? 하지만 그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 3
    독살, 중독, 암살
    2025-04-28

    독살로 읽는 세계사

    The Royal Art of Poison
    3
    완독일 2025-04-28
    키워드 독살, 중독, 암살
    출판사 현대 지성
    작가 엘리너 허먼

    리뷰


    중세... 근대? 에는 정말 다양하고 끔찍한 독이 많았구나... 그리고 멋모르는 사람들이 독성 물질인줄도 모르고 그것을 사용했구나...
    독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더러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독살인지 아닌지 이제 와서 알기는 되게 어려울 것 같다. 시신이 온전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하지만 정말 독살당한 경우에는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도 신기하다.
    요즘도 독살이 많이 있겠지. 우리가 모르는 것 뿐이겠지.
    의외로 최근의 이야기와 함께 김정은 김정남의 이야기도 있어서 놀랐다.
    다양한 종류의 독이 정리되어 있는 거 좋다.
    본문보다 부록이 더 맘에 든다.


    가장 고통스러운 독은? 스트리크닌
    전신에 극심한 경련을 일으킨다. 이것에 노출되면 탈진하거나 기절하기 전까지 2~3시간 동안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제정신이 아닌" 혹은 "완전히 미친"을 뜻하는 "mad as a hatter"는 모자를 만드는 동안 수은을 흡입했던 모자 장수(hatter)에게서 유래한 표현이다.


  • 5
    퇴마, 용기, 선의, 친절
    2025-04-18

    보건교사 안은영

    5
    완독일 2025-04-18
    키워드 퇴마, 용기, 선의, 친절
    출판사 민음사
    작가 정세랑

    리뷰


    인표랑 은영의 관계가 재미있다.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꼭 손을 잡아야 하는 게 좋은 느낌이 든다. 설정이 무척 신기하고 참신한 느낌. 좋은 기운, 누군가의 순수한 바람이나 열망,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쁜 것들을 퇴마한다는 것. 명승지에 가서 충전한다는 것. 장난감 칼이랑 비비탄 총으로 퇴마하는 것. 다 귀엽고 유쾌한 느낌.
    가볍고 밝고 발랄한 느낌이었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염없이 유쾌하다가도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는 아슬한 분위기의 가장자리가 좋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그래도 너무 칙칙하지만은 않다. 칙칙해지지 말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세계는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걸까?
    선하게, 친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악하게, 악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왜 그렇게 살까, 싶기도 하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은 결국 지게 되어 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친절하고 착한 거다. 그 말이 좋다. 우리는 언제나 이길 수 없고, 가끔은 도망쳐야 하지만 결국 이긴다. 사랑과 정성으로.
    둘이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특히 인표가 은영에게 마음 있는데도 계속 눌러 오고 왔던 게 정말 정말 좋았다. 마음이 먼저 생기는 게 남자라서 어정어정 하면서도 멀리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게 좋다... 여자는 관심 없어야 함.

    아아아, 역시 이상한 여자구나.
    고등학생이 벌써 다 큰 것 같지만 그래도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른들을 그만큼 잘 믿기도 힘들다. 믿지 말아야 할 어른들까지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
    해가 져도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아이.
    격하게 몸부림치며 부서지는 죽음도 있는가 하면 정현처럼 비누장미같이 오래 거기 있는 죽음도 있는 것이다.
    속도 없는 젤리피시만 보건실에서 너울거렸다.
    사기라도 좋아. 속고 싶어.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부서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역시 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구해 주러,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러 오지 않는다.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 하는 그런 넌더리야.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마음 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니가 안 만나 줬잖아!"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 5
    괴기, 수수께끼, 일제강점기
    2025-04-07

    적산가옥의 유령

    5
    완독일 2025-04-07
    키워드 괴기, 수수께끼, 일제강점기
    출판사 현대문학
    작가 조예은

    리뷰


    적막하면서도 눅눅한, 음습하고 어두운, 무언가... 한국인의 소설이면서도 소재 때문인지 일본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기분.
    과거와 현재가 기묘하게 이어지는, 어쩌면 현재는 과거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와 약자 사이의 아주 작은 온기는...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장르는 호러이지만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
    괴물은 괴물이 되고 사람은 괴물에게서 사람을 구한다.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공포스럽고 기괴한, 소름끼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닌 애틋함이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그랬구나.

    죽음과 이별이 너무나 태연하게 벌어지는 시기였다.
    "스스로를 탓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
    "자해는 내 취미야."
    죽어가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내가 있을 곳도 있다.
    "목소리를 들려줘."


  • 5
    소외된, 강, 호수, 사랑, 가족
    2025-04-02

    아가미

    5
    완독일 2025-04-02
    키워드 소외된, 강, 호수, 사랑, 가족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
    작가 구병모

    리뷰


    과격하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충격적인 전개와 과하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수려한 묘사와...
    때늦은 사랑은 재앙이다... ...하필 그 시의 제목도 수몰지구다
    세상에 의지할 곳도 믿을 곳도 없는 사람, 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정 붙이고 사랑했던 사람. 몰랐지만 사랑이었고, 이제 와서 알게 되었지만 사랑했었다. 너무 늦게 알아 버려서, 이제 말도 못 하게 되었지만. 만약 그 사람을 다시 찾게 된다면 사랑한다고 꼭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절대로 어디에서 잘못 걸리거나 묻혀 썩어가는 게 아니라 바다에 닿아서 그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계속 물 속을 헤매면서, 결국 그 사람을 찾아내고 물거품이 되더라도 사랑했다는 말을, 꼭 전하면 좋겠다.
    예뻐. 그 말보다 더 나의 존재를 긍정해주는, 살아주었으면 해.


    아무튼 모든 물결치는 소리는 세이렌의 노래라고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좋을 때다…… 불행을 전시하는…….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


  • 5
    선함, 인간본성, 재난, 선의
    2025-04-14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5
    완독일 2025-04-14
    키워드 선함, 인간본성, 재난, 선의
    출판사 문피아
    작가 연산호

    리뷰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 위기 상황, 긴급 상황에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행하는 일은? 단순하게는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동물적 본능이지 사람의 본능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니까.
    하지만 동물은 사람을 배신하지도 않고, 도움을 주는 데에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고양이들을 두고 어디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복합적이고, 이상하고, 다양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밉다.
    어떻게 신해량 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지... 아 존재 안 하지
    캐릭터들이 정말 다양하고 다채롭고 재미있지만... 특히 김재희가 정말 재미있고 흥미롭다. 뭐하는 놈이지 이거.
    신해량도 무현쌤도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혼자서 탈출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할텐데도 그러지 않고... 이 좋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무현쌤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사람은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간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으로, 정신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선의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생물이다. 심해가 아무리 깊고 어두워도... 그래서 무수히 많은 절망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
    모두 다 같이 행복해져서 다행이다.


    "Don't turn into a monster in crisis situation. (그렇게 쉽게 괴물로 살지 말자. 아무리 힘들어도.)"
    남이 웃는 모습은 왜 내가 가진 불안과 우울까지 줄어들게 만드는 걸까. 내가 웃는 것도 아닌데.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선한 행동을 통해 서로를 돌보고 도왔으면 좋겠다.
    나는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
    "이 해저기지에서 선생님이 제일 상냥했어요."
    홀로 기억하는 나만이 당신들의 다른 모습을 안다.
    '나는 직장에 출근할 때마다 죽었다가 퇴근할 때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나는 일일 지저스다.'
    복수는 얼마나 해야지 복수를 끝냈다고 할 수 있을까.
    "남한테 기대서 손쉽게 얻을래요. 어렵고 힘들게 자기 구원하기 싫어요."
    아무 기억도 없이 죽었다 살아나는 다른 사람들조차 잠시나마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데, 날을 거듭할수록 계속해서 쌓여가는 기억과 고통, 슬픔과 좌절들을 내 뇌가 감당할 수 있을까.
    "동행인이 널 죽이지 말자고 하는군. 하지만 난 네가 비협조적으로 굴었으면 좋겠다. 당장 던질 수 있게."
    구원자를 제 손으로 상처 입히고,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매력적이라서 그래요.
    "제 세상은 이미 무너져내린 지 오래라서 말이에요.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세상을 보면 먼지로 만들고 싶거든요."
    "당신이 썩은 동앗줄이라서 잡으면 떨어져 수수밭에 눕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줄줄이 매달릴 거예요."
    "오늘도 힘내자."
    "……인생 한 번 사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상대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신기루를 나 혼자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슬픈데 어쩔 수 없지.
    "슬프고 절망적이었던 과거를 끌어안고 힘겹게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립다.
    보고 싶다.
    거기서 그렇게 죽게 놔두기 싫다.
    나는 이제 심해를 안다.


  • 3
    문장, 맞춤법, 글쓰기
    2025-03-21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3
    완독일 2025-03-21
    키워드 문장, 맞춤법, 글쓰기
    출판사 산지니
    작가 이진원

    리뷰


    알기 쉬운 예시와 간결하고 정확한 설명으로 맞춤법과 문법을 바로잡아 주는 책. 생각보다 간략한 편이지만 그래도 알기 쉽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읽어 볼만 하다.


    좋은 글을 쓸 욕심이라면, 하루 종일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들여다볼 게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이 일의 근본이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고 왜 이런 말을 쓰면 안 되는지를….


  • 4
    사랑, 격정, 파멸
    2025-03-19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4
    완독일 2025-03-19
    키워드 사랑, 격정, 파멸
    출판사 (주)미르북 컴퍼니
    작가 에밀리 브론테

    리뷰


    모든 사람들이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소설. 그 중심에 히스클리프가 있다.
    잔인하고 잔혹한 사람. 폭력적이고 복수심에 가득하다. 오직 복수를 위해 증오를 품은 채 기다린 사람.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그 독이 사라지거나 나아지기도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도저히 사랑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악마 같다. 그의 본질은 악일까?
    마치 악마가 데려간 것처럼 눈을 뜬 채로 죽은 그의 마지막은 허무하다. 복수의 끝처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남자가 자신을 괴롭히고 홀대한 모든 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랜 시간 칼날을 갈고 마침내 그 끝을 앞에 두었으나 결국에는 사랑이 그를 파멸시킨다. 복수의 끝이 허무라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그의 오랜 시간에 걸친 복수가 실패했다는 것에 그는 절망으로 죽어 버린 것일까. 어쩌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보고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고는 그때의 열정과 열렬했던 감정, 모든 것을 바쳐도 좋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고 캐서린을 따라 가 버린 것일까.


    그러니까 나는 헤어튼의 모습에서 내 불멸의 사랑, 내 권리를 지키려는 열렬한 노력, 나의 비천했던 시절,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나의 고통 등을 보았던 거야.


  • 5
    리스본, 삶, 자아, 우울과 공허, 권태
    2025-03-10

    불안의 서

    Livro do desassossego
    5
    완독일 2025-03-10
    키워드 리스본, 삶, 자아, 우울과 공허, 권태
    출판사 봄날의책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

    리뷰


    누군가의 넋두리,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문장으로, 책으로 옮겨 놓은 느낌. 그러나 놀라운 것은 나는 이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 것 같다. 공명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이것에 대해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공허와 우울과 무의미에 대해서.
    모든 세상을 우울하고 칙칙한, 공허하고 침잠한 무채색으로 보는 사람. 이 사람의 공허와 우울과 침몰에 대해 읽고 있다 보면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행복이란 뭘까?
    몰락과 침몰. 공허와 권태. 소멸해가는 삶에 대한 지긋지긋한 경멸.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슬픔에 대하여. 그 어떤 언어도 그 어떤 문장도 온전한 감정을 담아낼 수는 없다. 사람은 결국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 개념이 언어가 되는 순간 그것은 가공되어 타인에게 전달된다. 타인은 그것을 다시 재가공하여 받아들인다. 타인의 머릿속에 마침내 닿은 생각과 개념은 나의 것이 아니다. 언어가 한 번, 타인의 세계가 두 번 가공하고 걸러낸 이해. 그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영원히 멀고 나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으며 우리는 간혹 시선이 마주친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운명으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우연이며, 절대로 절대적인 것은 없고, 반드시 정해진 것 또한 없다.
    문득 우울해질 때 공허해질 때 집어 들고 한 페이지 대충 펼쳐서 읽기 좋은 책. 사색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항상 그랬듯이 혼자이며, 앞으로도 항상 혼자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나를 옭아매지만, 아무것도 나를 붙들어주지는 못한다.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누군가의 손아귀를 목덜미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그런데 방금 다른 이의 손을 내 목에서 떼어낸 내 손이, 그 해방의 몸짓과 동시에, 내 목에 밧줄을 걸어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벗겨낸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목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나를 교살한다.
    신들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의 노예다.
    내 삶의 목적은 부패일 것이다.
    환상 자체에 내재된 상실, 환상을 갖는다는 것의 무익성, 상실하기 위해 환상을 가져야 한다는 선행피곤, 환상을 가졌다는 사실이 주는 근심, 환상의 종말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환상을 가졌다는 지적인 수치.
    마치 온실의 식물처럼, 나는 내 증오를 재배한다. 나는 삶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오직 누군가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이미지를 사랑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상, 즉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미묘한 삶의 유형이다. 영혼의 성분, 꿈의 숨겨진 폐허에서 채취한 약초, 생각의 무덤에서 꺾어온 검은 양귀비꽃, 저승의 강변에서 요란하게 가지를 흔드는 음란한 나무의 길쭉한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감지할 수 있는 우주의 사물은 내가 사랑했던 것의 시체가 된다.
    우리는 죽을 수 있다. 사랑하기만 했다면.
    긍정이라 불리는 착각, 믿음이라 불리는 질병, 행복이라 불리는 비천함.
    몰락은 내 운명이다.
    설사 내가 사랑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은 보답받지 못하리라.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즉시, 그 대상은 시들어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내 운명 자체는 크게 치명적이지 않다. 다만 뭐든지 나와 관련되기만 하면 치명적으로 변하는, 이 약점이 문제다.
    복음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인간이나 인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사실상 아무도 그들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을 만든 사람은 인간의 영혼에 독을 풀었다.
    노멘 에스트 오멘Nomen est omen, 이름은 하나의 징후다.


  • 4
    문해력, 어휘력, 교양 지식
    2025-02-28

    문해력 숲에서 캠핑을

    4
    완독일 2025-02-28
    키워드 문해력, 어휘력, 교양 지식
    출판사 프시케의숲
    작가 이태이

    리뷰


    알던 용어들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애매하게 생각하고 있던 개념, 용어들에 대한 알기 쉬운 해석. 한 번쯤은 교양 서적으로 읽어도 좋을 책. 인문학과 심리학, 과학을 비교적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해석하고 판단한 책. 특히 과학과 종교에 대한 입장이 좋았다. 무엇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고 그저 그 시대에 더 선호되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더 높이 평가되는 것일 뿐. 잘 알고 있던 용어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만들어 주는 책.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자들로부터 검증된'이라는 뜻이고, '종교적'이라는 말은 '종교인들에게 검증된'이라는 뜻이다. 또 '예술적'이라는 말은 '예술가들로부터 검증된'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다. 누구에게 검증된 것이 더 우월한가. 그것을 판단할 중립적이고 공정한 심판자는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 3
    여신, 비너스, 욕망
    2025-02-14

    여신의 역사

    Venus and Aphrodite
    3
    완독일 2025-02-14
    키워드 여신, 비너스, 욕망
    출판사 미래의 창
    작가 베터니 휴즈

    리뷰


    아프로디테, 비너스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정리한 책. 고대 아프로디테 여신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그리고 중세와 근대를 거쳐 어떻게 현대에 재해석되었는지. 과거 모든 것을 뒤섞어 버리고 사랑과 전쟁,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위대한 여신 아프로디테는 현대에서 다소 빈약해지고 관음증을 허락하는 매춘부로 전락했는지도. 그 과정에는 기독교를 비롯하여 여성을 두려워하고 여성이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막은 세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아프로디테는, 비너스는 사랑이 사랑으로 있는 한 영원할 것.


    아무래도 사랑이 지긋지긋해지기 전까지는, 사랑의 여신은 매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 2
    영화, 심리학
    2025-02-10

    영화관에 간 심리학

    2
    완독일 2025-02-10
    키워드 영화, 심리학
    출판사 원앤원북스
    작가 박소진

    리뷰


    다소 글쓴이의 사견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책이지만 그럼에도 글쓴이의 해석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던 부분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심리학 전공자이긴 해도 영화 전공자는 아니라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하다고 여겨졌고, 영화 하나 하나를 깊이 있게 다루는 대신 얕게 여러 개를 다루었다. 영화와 영화의 공통점을 찾아 연결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책 제목 그대로 심리학자가 영화관에 갔을 때 영화에 대한 제반 지식 없이 약간은 어설픈, 일반인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분석만 한 건 아닌지 아쉬웠다.


  • 4
    술, 상실
    2025-01-30

    안녕 주정뱅이

    4
    완독일 2025-01-30
    키워드 술, 상실
    출판사 창비
    작가 권여선

    리뷰


    우울증 직빵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다. 우울해진다.
    술로 만났다가 술로 헤어지는 사람들. 술을 마시며 떠올리는 사람들과 기억들. 술 때문에 혹은 술 덕분에. 잊어야 하는 현실과 잊고 싶은 현실과 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뒤섞여서 잊어야 하는 것을 잊지 못하고, 잊고 싶은 것은 더욱 선명해지고,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술이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명징하게 만들기도 하고. 술 덕분에, 혹은 술 때문에.


    "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굽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놀란 그녀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온 겁니까?"


  • 3
    금기, 흡혈귀, 사랑
    2025-01-20

    박쥐 각본집

    3
    완독일 2025-01-20
    키워드 금기, 흡혈귀, 사랑
    출판사 그책
    작가 박찬욱, 정서경, 최인

    리뷰


    영화만 봤을 때는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소설을 통해 좀 더 디테일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영화에 나왔던 대사들이 그대로 있어 장면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지만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지 비주얼적인 충격은 영화 쪽이 더 좋았던 것이 약간 아쉬웠다. 라 여사에 대한 심리 묘사라든가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좋았지만 역시... 영화는 책을 읽은 다음 봐야 한다.


    당신을 안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나락으로 내려갈 수는 있어도 높은 곳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