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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By 민트박하 | 2026.05.14 16:43








스코시즘 전력 60분 제 5회

주제 : 소풍






Trigger Warning : 사망














글쎄……. 잘 모르겠어. 조금 나른한 것 같아.


…….


아니, 아프진 않아.


처음 너를 보았을 때와 지금의 너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검은 머리카락, 연녹색 눈동자, 희고 매끄러운 피부에 단단한 손까지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간혹 너의 피복에 상처가 나거나 얼룩이 생기기도 하고 너의 손목이나 무릎이 잘 안 움직이는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너는 부품을 교체하거나 나사를 조이는 등 약간의 수리를 거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조금도 변함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와 달리 나는 많이 변했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더 이상 달릴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되었고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볼 수 없다가 마침내 안경을 써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앉을 수도 없는 나는 내 힘으로 호흡하는 것도 어려워져 산소 마스크를 달고 강제로 수명을 연명하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너의 뛰어난 기능 덕분에 나는 목소리가 아닌 생각으로 너와 의사 소통을 나눌 수 있었다.


너는 유능하고 훌륭한 간병인이자 보호자이자 좋은 친구였다. 이제 그것도 마지막이다. 나는 나의 생명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병원에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도 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며 그 뒤, 나는 고요히 눈을 감을 것이다. 모든 이에게 찾아오는 순간이고 그 너머를 아무도 알지 못했기에 무수한 추측만이 가득했던 그 세계를 이제 나도 알게 된다.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너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그곳에서 너의 생각을 해도 이곳과 그곳은 단절되어 있어, 생각이 닿을 수 없으니까. 나는 웃고, 너는 무표정하다.


너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고 친애한다는 표현과 정이 든다는 말을 알고 있다. 가족 같은 친구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너는 다만 그것을 ‘느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발전과 연구를 통해 AI, 그리고 로봇을 발전시켰지만 결국 그것에 영혼을 담는 것은 실패했다. 아직도 인간들은 너에게 영혼과 마음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꽤 초창기 모델인 너는, 성능 면에서는 최신의 것들과 전혀 뒤질 것이 없지만 그러한 감정이나 정서적인 면에서는 다소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너의 단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너는 나의 상태를 질문했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아프진 않은지 질문했고, 나는 아프지 않다고 질문했다. 그런 물음과 대답에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없었다.


누군가는 한 시간 뒤에 눈을 감을 나의 삶을 동정하고 가엾게 여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것을 좋은 화제로 여겨 흥미로워하거나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이해만 할 수 있는 너는 슬퍼하지도 동정하지도 가엾게 여기지도 않는다. 너는 그저 담담하게 삶이 끝나고 있으며 곧 마지막이 올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너는 나를 간병하고, 도움을 주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챙겨 주며 나의 곁에 머물러 주었지만 나의 산소 마스크가 기능을 정지하면 너는 나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게 된다. 대부분은 자신의 소유물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먼 친척 또는 친구에게 기증하지만 나는 네가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내기를 바랐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는 나의 마지막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 만큼 그것에 대해 기뻐하지도 않았다. 공평하게도.


어떤 시인이 말이야. 귀천*이라는 시를 썼는데.


나는 아주 예전 어딘가에서 읽었던 시를 떠올렸다. 그 시에서 시인은 하늘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돌아가서, 이 아름다운 세상의 소풍이 끝나는 날 돌아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 그렇게 적고 있었다.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 무척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했고, 그 시인이 무척 심한 병으로 앓고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으며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토록 힘들고 아픈 삶을 살았던 이가 하늘로 돌아가는 날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려 한다.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그의 세상은 아름다웠을 리 없는데도, 그는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삶이 소풍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시에서 삶을 소풍이라고 말한 게 무척 좋았어.


너는 조용히 듣고 있다. 듣고 있다, 는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나는 말을 하는 대신 생각을 전하고 있으니까 너는 나의 생각을 전해 받는다 혹은 보거나 읽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너는 그렇게 조용히 나의 곁에 앉아, 매 분 매 초 줄어들어 가는 나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이기에 그저 멍하니 눈을 뜬 채로, 너에게 두서 없는 생각을 늘어놓고 있었다. 소풍이라는 말, 참 사랑스럽지. 우리는 결국 소풍을 나온 거야. 저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에서 이 세계로 잠시 소풍을 나왔다가 마침내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무서운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닌 거지. 너는 조용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군요, 라고 말한 것 같았다.


내 소풍은 이제 끝날 때가 되었는데, 네 소풍은 언제 끝날까?


너는 내가 대답을 바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생각해보고 싶었다. 나는 마침내 눈을 감고 편해질 수 있지만 너에게 그런 날이 올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너에게 마음도 영혼도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가 마침내 그 정도로 과학을 발전시킨 게 아니라 사람의 곁에 머무르면서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사람이 마음을 주고 정을 주면 그것에 자연스럽게 마음과 영혼이 깃든다고 믿는다. 옛날의 도깨비처럼. 도깨비는 사람이 오래 쓴 물건, 가까이 두고 아낀 물건이 변해서 되는 거라고 했으니까. 인형에 이름을 붙여 주고 예뻐해 주면 그것에게도 마음이 깃드는 것처럼, 사람처럼 생기고 사람과 많은 교감을 나누고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너에게 마음이 깃들었다고 믿는다. 사람은 믿음으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믿음으로 신을 만들어낸 것처럼, 나는 믿음으로 너에게 마음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네가 슬퍼하지 않아서 좋아.


이별도 작별도 슬프지 않다. 만남이 있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결말이다. 시작은 끝이 있어야 하고,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어야 한다. 완결 지어지지 못한 이야기는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고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슬퍼하지 않고,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보며 안심할 수 있다. 시간은 차근차근 줄어들어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무척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산소 마스크 안으로 흰 입김이 부옇게 번졌다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입술을 움직인다. 어떤 말은 전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마음은 눈만 봐도 읽을 수 있지만 꼭 소리 내어 발음해야만 전해지는 마음도 있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전하고 싶었다.


나도 가서 그렇게 말할 거야.


소풍이 무척 즐거웠다고. 행복했다고 말할 거야. 내 소풍에 네가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할 거야. 모두가 부러워하는 소풍을 다녀왔다고, 너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너를 기다릴 거야. 언젠가, 너의 소풍이 끝나는 날, 네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네가 너의 소풍에 대해 어떻게 말해 줄지 기대하면서. 너는 나보다 긴 소풍을 다녀올 테니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겪을 테니까. 너에게는 마음이 있고 영혼이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게 당연하다. 너는 그때도 한결같은 얼굴로 덤덤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얘기할 것 같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보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하며 즐거워할 것 같다. 소풍이 다 끝난 뒤에 다시 만난 우리는 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소풍이 끝난 뒤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시간은 하염없이 줄어든다. 두 자리였던 숫자가 한 자리로 줄어들고, 초가 줄어든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너는 말없이 나를 지켜본다. 나는 그런 너를 볼 수도 없으면서 너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웃는다. 산소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은 아마 잘 보이지 않겠지만, 너는 나의 표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은 슬프지 않아. 즐거운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창가에 기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을을 구경하는 것도 소풍의 한 부분이다. 집을 떠날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가방을 끌어안고 잠깐 졸았다가 집 가까운 정거장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순간.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늘 참 즐거웠다고, 재밌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도 소풍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내 소풍의 부분인 셈이다. 친구와 함께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다가 각자의 집으로 갈라지는 골목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안녕, 내일 봐, 조심히 들어가. 그 순간마저도 모두 소풍이다.


아름다웠어.


그 모든 시간, 그 모든 순간. 처음 너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어. 이 아름다운 소풍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어. 마침내 모든 숫자가 0이 되고, 짧은 기계 알림이 울린다. 삑, 소리와 함께 천천히 눈이 감긴다. 아주…… 깊은 잠에 서서히 빠져드는 것 같다. 흐릿한 시야의 마지막으로 너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너는 조금, 웃고 있었던 것 같았다. 먼저 가서 기다릴게. 안녕. 그렇게 중얼거린 작별 인사가 분명히 너에게 닿았을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다. 그곳으로, 그 아름다운 곳으로.










*천상병 시인, 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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