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집
맹꽁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 허블 사무소 소속 스코시즘 로보 프로스터 2차 창작
※ 개인 해석 및 날조
맹꽁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더 좋은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고 원래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내 이름은 그냥, 맹꽁이 되어 버렸다. 너는 나보다 더 그 이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나의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일도 없었기에 맹꽁이라는 이름은 나보다 네가 더 많이 쓰는 것이고 그렇다면 네 마음에 드는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네가 ‘맹꽁’ 이라고 발음하는 그 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너는 무척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너와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너를 처음 설정할 때 목소리의 톤이라든가 울림, 깊이, 발음의 정확도 등을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는 발음도 좋은 편이었고, 또박또박 말하는 편이었으며, 울림과 깊이도 무척 내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나는 처음의 너를 설정한, 그러니까, 너를 구매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너를 원했을까. 그는 무엇을 위해 너를 이렇게 설정했을까. 네가 입고 있는 옷은 네가 고른 것일까, 그 사람이 골라 준 것일까. 너는 너 자신의 설정을 매만져서 너의 목소리와 머리카락, 눈동자 색과 피부 색을 바꾸었을까. 어쩌면 그것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해저 도시에서 탈출해 온 또 다른 너와 또 다른 너들은, 그런 식으로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났다. 해저에 있는 사람들이 너를 찾으러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너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너는 아직 내가 처음 너를 보았던 그 춥고 지저분한 골목에 앉아 있었다. 네 위로 쌓인 눈은 많지 않았는데, 내가 보지 않을 때마다 네가 움직여서 그 눈을 털어내는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와서 너의 위에 쌓인 눈을 털어 주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너는 여기에 며칠 동안 머무르고 있었고 나는 그게 너에게 별로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너는 방수로 만들어졌고 여간한 충격에는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 방치된다면 어딘가가 부식되거나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테다. 너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냥 대답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어디로 갈 계획이야?”
“아니오.”
“그럼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닙니다.”
“누굴 기다리고 있어?”
“…….”
그 질문에 너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네 대답을 잠시 기다렸지만, 너는 꽤 오래 생각에 잠겨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머릿속에서 어떤 계산이 이루어지고 연산이 작동하는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너의 연산을, 계산을,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하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고 모든 언어를 번역하고 우리는 들을 수 없는 주파수나 파장까지 감지하는 너는, 우리보다 명백히 우월하다. 너의 대답은 예측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그냥 기다렸다. 한참 만에 너는 입을 열었다.
“기달리. 기달리?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
말이 꼬인 것처럼 너는 이상한 발음을 했다가 그것을 한 번 되풀이하고는 정정했다. 그건 너에게 흔치 않은 설정이라고 할까, 특징이라고 할까, 아무튼 내가 아는 다른 너들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너는 언제나 또박또박 발음하고, 정확히 발음하며, 억양과 강세도 완벽하다. 그런데 너는 지금, 마치 실수를 한 것처럼 급하게 말하려다가 혀가 꼬인 것처럼 이상한 발음을 했다. 나는 의아한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았고, 너는 보통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 보여주곤 하는 부끄러워하는 표정, 수줍어하는 표정, 민망한 표정을 짓지 않고 완벽히 덤덤하고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어쨌든 너는 누군가를 기다리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예, 아니오로 대답하게 되는 질문 외에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제 뭐 할 거야?”
“아니오.”
이런 질문에도 예, 아니오로 대답할 줄은 몰랐다.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보통은 무엇을 한다, 그것은 무엇이다, 혹은 특별히 무엇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질문에서 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것이 아닌 무엇, 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의 질문도 무엇을, 에 대한 질문이었고, 네 대답은 마치 ‘앞으로 쭉 걸어가면 뭐가 나옵니까?’ 라는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한 것처럼 엉뚱했다.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무엇이 나오는지, 에 대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나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싫어서인지는 여전히,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네가 나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이름을 알게 되었을 뿐이니까.
보통 막 이름을 알게 된 상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거나 마음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추억, 트라우마, 슬픔 따위를 꺼내 놓지는 않는다. 첫 만남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를 탐색하고 그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와 간격을 유지할 것인지 가늠하는 것이기에, 친해진다는 것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상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는 것이기에. 그리고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비밀이나 슬픔, 아픈 추억, 말하고 싶지 않은 진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니 이제 막 이름을 알게 된 첫 만남이나 다름없는 지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 무척 적절치 못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 우리 집에 같이 갈래?”
“…….”
네 연녹색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매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던 모호한 시선이, 이제야 나에게 닿은 것 같았다. 네 시선에 비친 나는 어떻게 인식되고 분석되고 있을지 궁금했다. 너의 시야는 나의 체온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피부 색이나 눈 주위 혹은 입술과 눈의 상태를 통해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외모를 보고 대략적인 성별이나 나이를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너는 나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네가 나를 분석하면서 그 한쪽에서는 내 질문에 대해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질문은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니 엉뚱한 대답을 들을 걱정도 없었다.
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너는 입을 열었다.
“왜입니까?”
“어…… 그냥.”
너는 한숨을 쉬려 했다. 나는 다급히 대답을 정정했다.
“여기보다는 좋을 것 같아서.”
썩 넓은 것도 아니고 최신식 시설이나 설비를 갖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재력이 넘치거나 함께 지낼 누군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너 하나 정도 머무를 공간은 있었고 나는 네가 이곳에 계속 버려진 것처럼 놓여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다른 어디로 갈 계획이 없다면. 이 정도 제안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숨겨진 계획이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대답해 주지 않은 이상 나는 그것에 대해 모르니까. 만약 네가 너의 비밀스러운,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어떤 계획 때문에 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 때는 예, 아니오가 아닌 다른 대답을 해 주겠지. 지금처럼.
너는 그 대답에 눈을 잠깐 굴렸다. 입술이 조금 삐죽인 것도 같았다. 하긴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 냅다 가겠다고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긴 했다. 나는 초대를 했고, 그 초대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너의 선택이지만, 나는 조금 더 어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네가 ‘싫어’ 라고 대답할 것 같아서.
“적어도 벽과 지붕은 있으니까.”
그렇게 장점으로 어필되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골목에서 눈이 쌓여 가면서 계속 앉은 듯 누운 듯 머무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적어도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푹신한 바닥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너는 왼쪽으로 눈을 한 번 굴렸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한 번 굴린 뒤 나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 그 눈동자는 유독 선명했다. 한밤중에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유독 선명한 달처럼.
“어딥니까?”
“갈 거야?”
“예.”
너는 그렇게 대답하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삐걱이는 소리 대신 묘하게 관절과 관절 사이로 뚝, 뚝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한참 만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네 앞에서 계속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나도, 몸을 일으키자 다리에서 와드득 하는 살벌한 소리가 났다. 약간의 저릿함도.
나는 허리에 손을 짚고 두어 번 몸을 젖혀 뻐근한 몸을 풀었다. 너는 목을 한 바퀴 느리게 돌린 다음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무척 키가 컸다. 나는 너를 올려다보다가, 등을 돌려 앞장섰다.
“이쪽이야.”
등 뒤에서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났다. 네가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였다.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와서 나는, 묘하게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