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상
나는 존재했지만 동시에 부재하는 것과 같았다.
※ 허블 사무소 소속 스코시즘 로보 프로스터 2차 창작
※ 개인 해석 및 날조
나는 존재했지만 동시에 부재하는 것과 같았다. 집은, 편의상 집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생활의 최소한을 위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했기에 마련한 곳일 뿐이지 본격적으로 소중하고 아늑한 휴식처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필요한 수면을 취하는 곳이었고, 필요한 청결을 유지하는 곳이었으며, 필요한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그나마도 밖에서 때우는 날이 잦아, 집에서는 늦은 저녁이나 야식 정도만 챙기는 정도였다. 그러니, 너의 눈에 내 집은 돼지우리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 너를 초대한 이유는 말했던 것처럼 적어도 벽과 지붕이 있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너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왠지 모르게 너를 그곳에 계속 놓아 두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네가 저 해저 도시에서 몰래 탈출해 달아난 거라고 생각했고, 네 목에 있는 바코드 자국을 보았고, 실제로 네가 어떤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불쑥 집으로 초대했다. 아마 네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여린 새싹 같았던 연두색 눈동자.
나의 일과는 이른 아침에 시작된다. 부스스 눈을 뜨고 세수를 한 뒤 아침은 챙길 때도 있고, 거를 때도 있다. 옷을 갈아입은 다음 바로 외출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내 직업은 망가진 물건을 수거해서 고쳐 파는 일이었다. 너는, 그러니까 맨 처음 만들어진 너와 그 이후로 계속 만들어진 너는 만능으로 어떤 일이든 척척 대부분 잘 해냈지만 점차 버전이 업그레이드 되고 사람들의 선호도와 커스텀이 디테일해지면서 모든 것을 골고루 얕게 잘 하기보다는 어떠한 것에서 전문가만큼, 그러니까 좁고 깊게 잘 하는 쪽으로 변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너를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한다면 전투기 제작이나 도청 기능, 오폐수 정화 기능 따위는 별로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능을 위한 데이터나 부품 대신 일반 가정집에서 더욱 필요로 하는 것, 요리 레시피, 옷이 만들어진 재질에 따라 관리 세탁하는 방법, 대청소를 하는 방법의 데이터를 넣고 그에 필요한 부품을 삽입했을 것이다. 만약 네가 바닷가에서 물고기, 조개, 산호 등등 해양 자원을 채취해서 판매하는 사람에게 사용된다면 너는 일반 가정집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보다는 깊은 곳에 잠수했을 때 수압을 견디는 기능과 채취한 해양 자원을 보관하는 기능 따위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직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너는 비싼 자원이고 노동력이다. 너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뛰어 넘은 지 꽤 되었다. 인간은 휴식이 필요하고 열량 소모 대비 효율이 좋지 못하며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여가 시간을 가져야 한다. 너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번거롭고 까다로운 노동력이기에 중요한 산업이나 업무에서 인간을 사용하지 않게 된 지가 꽤 되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너희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잘하고 비효율적이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쓸모 없는, 어쩌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일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가치한 살덩이가 가지는 가치란?
어쨌든 그래서 나는 길을 걸어 다니면서 혹은 고물상이나 폐품 처리장에 가서 망가졌지만 아직 쓸만한 물건들을 집어 왔다. 원래 창고로 쓰던 방 외에도 집에는 이러한 물건들을 쌓아 두는 방이 있었고 그 방에는 작은 화장실도 딸려 있어서 세척하기에도 좋았다. 그 방에는 또 작은 쪽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고 나가면 작업실과 이어졌다. 나는 그 작업실에서 다양한 것들을 수리하고 매만져 원래보다 더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곤 했다. 알람을 울리지 못하는 알람 시계에 청명한 소리로 울리는 종을 달아 주면서 타이머 기능을 추가해 준다든가. 낡아빠진 장난감을 다시 색칠하고 빠진 부품을 조립해서 어떤, 예술 작품처럼 보이게 만든다든가. 나는 내 직업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이 일은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과감함을 필요로 했다. 영 복원이나 수리가 어려울 것 같은 것은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을 챙긴 뒤 버린다든가, 기존의 용도와 전혀 다른 용도로 개조한다든가.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들은, 중간 도매상을 통해 판매한다. 그 자식은 중간에서 꽤 많은 중개료를 챙기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았기에 그런 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해저 도시에서 범죄를 일으키고 쫓겨난 자라고 하던데, 우리는 그런 것을 묻지 않기로 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으므로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쓸만한 것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온다. 정확히는, 작업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기 전까지 계속 일한다. 일하는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피곤할 때까지, 피곤해서 그리고 너무 졸려서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쳇바퀴 같다면 쳇바퀴 같은 일상이다. 그날 무엇을 발견하든 집으로 가져와서 손을 보는 과정이 같고 설령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집에 있던 무언가를 더 만지는 일상이었으니까. 다만 네가 나타나고 난 뒤부터 나는 쳇바퀴와 같은 일상에서 약간 궤도를 벗어난 삶을 살고 있었다. 외출하고 나서 모든 시간을 쓸만한 폐품을 찾는 데에 할애하는 대산 너를 구경했으니까. 어쩌면 너는 내가 발견한 폐품 중에서도 가장 쓸모 있는 폐품인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수선하거나 손을 대거나 고칠 이유가 없을 뿐이지. 그리고 너는, 청소를 무척 잘했다. 작업실에 둘 곳이 없어 생활 공간까지 침범하던 폐품들을 모두 작업실에 보기 좋게 분류, 정리해 둔 것은 물론 모든 생활 공간에서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모델하우스처럼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하게 청소해 두었다. 때문에, 내 집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무척 낯설었고 나는 너에게 더 좋은 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처음 내가 안내해 준 창고를 비운 방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너는 그곳에 있던 폐품들도 차곡차곡 정리해서 공간을 넓히고, 매트리스의 먼지도 털고, 창틀의 먼지도 닦고 바닥에도 머리카락 하나 굴러다니지 않도록 말끔하게 치웠기에 그 방은 그럴듯한 생활 공간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좁긴 좁았다. 나는 그 방에 있는 폐품들을 작업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너는 내가 하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유를 묻지 않고 옆에서 도왔다. 묵직한 것들은 같이 들었고, 내가 옮겨 놓으면 너는 그것들을 작업실에 다시 빈틈없이 정리했다. 내가 봤을 때는 이미 남은 공간이 없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너는 용케도 빈틈을 제대로 찾아 다시 가지런하게 정렬해 두었다. 너는 정말로, 가사 전반에 모두 능숙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단순히 입력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너는 스스로 연산하고 사고하여 결론을 도출하고 행동할 줄 아는 존재였다. 어쩌면 너는, 부재와 존재 사이에서 희미한 꿈 속에 갇혀 있던 나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존재해왔을 것이다. 확실한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으로 불리면서.
가사 전반에 모두 훌륭했던 너는 요리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다. 너는 간혹 식사 때가 되면 음식을 만들어 두었는데, 내가 집에 돌아오는 저녁 때 즈음이나 늦은 밤에 냉장고를 확인하면 샌드위치, 주먹밥 같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뒤 너에게 ‘먹어도 돼?’ 물어보면, 너는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곤 했다. 너는 보통 전기를 직접 충전하여 에너지를 얻지만 간혹, 드물게 음식을 섭취하여 그것의 열량을 에너지원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음식을 섭취한다면 굳이 그것을 먹기 좋은 형태로 가공할 필요는 없으며, 굳이 따진다면 열량이 높은 식재료를 그냥 입에 밀어 넣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물론 그보다 더 효율적인 것은 전기를 직접 연결하여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간혹 너와 함께 식사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너를 만든 사람들이 너를 보다 인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만든 기능이었다. 인간과 함께 음식을 먹고 그것을 소화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것이 위장인지 혹은 진화인지, 어쩌면 기만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너는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했고, 나 역시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배가 부르면 잠이 왔다. 그러면 충분한 시간을 작업에 쏟는 대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버려, 수입이 곤란해졌다. 그래서 나는 약간 배가 찼다, 고 느껴질 정도로만 음식을 먹는 것을 선호했고 처음에는 꽤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 두었던 너도 점점 손이 작아졌다. 어느덧 식사는 우리 둘이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긋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양이 되었다.
“내가 외출한 동안에는 뭐 하고 있어?”
“청소를 합니다.”
“그거 말고는?”
너는 그거 외에 더 해야 할 일이 있는지 묻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미처 시키지 못한 일이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없어?”
“딱히 없습니다.”
내가 뜨개질을 하라고 하면 너는 뜨개질을 해 놓을 것이다. 책을 읽으라고 하면 책을 읽어 놓겠지.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그림을 그릴 것이고, 일기를 쓰라고 하면 일기를 쓸 것이다. 나는 너를 임시로 취득하긴 하였지만 너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너는, 아마 주인을 원하지 않을 것이지만 너의 기능 자체는 다른 사람의 명령이나 부탁을 받는 것에 익숙하고 또 그것을 위해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동시에, 너는 지금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을 차례로 순서를 매겨 그것을 수행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이 집에, 이 환경에 사람이 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 가장 먼저 명령도 없이 청소를 시작했던 것이고 이 공간에 사람이 먹을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요리를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내가 너에게 뜨개질을 하라고 명령한다면 너는 청소와 요리, 빨래와 정리 정돈 등 이 집에 사람이 편히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요건들을 모두 수행한 다음 남은 시간에 뜨개질을 할 테지. 그것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우선 순위를 해치운 다음 내가 너에게 부탁한, 혹은 명령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책은 해?”
“가끔 근처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나는 그게 산책인지 혹은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찾아내어 배제하기 위해서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하고 싶은 걸 찾아보는 건 어때?”
너는 고개를 기울였다.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생각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네 눈동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주먹밥을 크게 한 입 깨물었다. 내 추측으로 너는, 네 자신이 원했기에 해저 도시에서 주인의 품을 떠나 이곳으로 도망쳐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이곳에 와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그곳을 떠나고 싶었기에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게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최소한의 충동, 욕망, 바람이 발생할 수 있다. 어쩌면 너는 그곳을 떠나기는 하였으나 그게 목적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다음 할 일을 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널브러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그대로 나를 바라보았다.
“찾은 다음에는?”
“그걸 하는 거지.”
“그러면?”
“좋겠지……?”
당연하지 않냐는 뉘앙스의 내 대답에도 너는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너는 금방이라도 ‘좋으면?’ 이라고 물어볼 것 같았다. 그런 너의 질문을 듣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나도 의문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걸 하면 좋지. 그런데 좋으면? 그 다음에는? 나의 작업은 먹고 살기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나조차도 하고 싶은 일을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일 생존과 관련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그것을 왜 하고 싶을까? 그래서 그것을 왜 해야 할까? 무수히 떠오르는 의문들 사이에, 딱 하나 확실한 게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잖아.”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부재로 수렴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면서 존재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 대답에 너는 눈을 내리깔았다.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너는 쌓인 눈 녹아 가는 지저분한 골목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벽과 지붕이 있는 집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고 기능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기에, 등등의 이유로 나의 집에 왔다. 그리고 나의 집에 와서, 이 환경에 가장 필요한 것이 청소라는 것을 깨닫고 곧장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사 일은 매일 해도 매일 해야 하는 것이 생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일 가사 일만 하고 있는 것은 쳇바퀴 같은 삶이나 다름 없다.
나는 그 삶을 이미 살아 봤으므로,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 그것을 향해 나아가길 바랐다. 너는 느릿하게 눈을 들어 올려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을 끝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무엇을? 이라고 묻는 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됐다고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도와줄게. 생각난 듯 덧붙인 내 말을 너는 반쯤 무시하며 하나 남은 주먹밥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