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일
나는 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죽고 싶었다.
※ 허블 사무소 소속 스코시즘 로보 프로스터 2차 창작
※ 개인 해석 및 날조
나는 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죽고 싶었다.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부재하지도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했다. 나는 존재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부재하고 싶었고, 내일을 기대하면서도 어제를 그리워했다. 나에게 내일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해가 지고 뜬 다음의 하루가 아니었다. 나의 내일은 오늘과 다른 날이었다. 오늘과 다른 것을 하고, 다른 곳에 가고, 다른 일을 하게 되는 날. 그 날이 바로 나의 내일이었다. 나에게 내일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나의 어제는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져 계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몇 번이나 해가 지고 떴는지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온 사방에서 빛이 나도록 청소를 해 두고 창고에 매트리스를 깔고 충전 모드에 들어갔다가 일어나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놓기 시작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일이 왔다는 것을.
어제와 다른 오늘은, 그러니까, 오늘과 다른 내일은 무척 특별하고 찬란한 것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오늘도 네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게 청소를 해 놓았는지, 집안이 온통 추울 정도로 환기를 해 놓았는지 궁금했고 주먹밥을 만들었을지 샌드위치를 만들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지 궁금해졌고 무엇을 시도하고 있을지, 무엇을 먼저 떠올려서 무엇에 도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궁금하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너는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아침 인사를 건네는 너에게 마주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오늘은 환기를 짧게 했는지 집 안이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았고, 언제나와 같이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거실이었다. 다만 주방은 약간 달랐는데, 지금 막 요리를 하고 있었던 터라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 프라이가 익어가고 있었고 토스터기 안에서는 빵이 노릇하게 구워지면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생활감 느껴지는 모습 가운데 네가 앞치마를 하고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집안일은 정말 얼마 없었다. 대부분은 로보가 전부 해치워 버리기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 거라든가 설거지 하는 것 등은 거들고 싶었는데도 로보는 나에게 전혀 틈을 내어 주지 않았다. 정신 차려 보면 빨래통은 텅 비어 있었고, 싱크대는 언제나 물때 없이 반짝반짝했다. 나는 네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엇을 만드는 것인지 짐작해보려 했다. 아마…… 크로크무슈, 인 것 같았다. 너는 내가 다가온 것을 알면서도 굳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짧은 인사에 나는 응, 좋은 아침. 이렇게 대답하고 외출할 준비를 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나가려는 나에게 로보는 한 번 정도 식사를 권하곤 했다. 아침 안 드십니까. 그러면 나는 가끔 식탁에 앉아 함께 아침을 먹기도 했고, 오늘은 별로, 하면서 그대로 나가기도 했다. 너는 내가 아침을 먹든 먹지 않든 특별히 신경을 쓰거나 서운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네가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다면 나는 매일 아침 더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함께했을 것이다. 너는 내가 서운하다고 말하면, 속상하다고 말하면 영향을 받을까?
그렇게 나는 내일이 오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내일은 그 자체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내일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기대하고 희망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갑작스럽게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날 아침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보통 너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는 등의 다양한 집안일을 해치웠고 그래서 나는 비몽사몽 막 잠에서 깬 상태에서도 문 밖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직 정적 가득한 아침이었다. 나는 멍하니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채 문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그동안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너를 길에서 주워, 집으로 데려와, 며칠을 함께 생활하는 꿈. 참 길고 생생한 꿈.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나는 곧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네가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무 말 없이 이곳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너는 아무 말 없이도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얼마든지.
동시에 나는, 만약 그렇다면 나의 내일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네가 떠났다면 나의 일상은 예전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아침을 먹지 않고 휘적휘적 밖으로 나가 쓸만한 잡동사니를 주워 오고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계속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영화처럼. 그래서 내 생각은 다시 보다 희망적인 쪽으로 흘러갔다. 어쩌면, 너는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모든 집안일을 마쳐서 지금 식탁 의자에 앉아 쉬고 있거나, 소파에 앉아 있는 거라고. 그래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라고. 그 생각에 네가 독서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취미 따위는 없다는 태클이 들어왔지만 무시했다.
이렇게 앉아서 계속 생각하는 것보다는 직접 나가서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고 빠르고 정확하다. 그리고 빠르고 정확하게 절망할 수도 있지. 나는 머뭇거리는 동시에 서둘러 문으로 향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문 손잡이를 잡고 짧게 숨을 참은 뒤 문을 열었을 때, 거실은 불이 꺼진 채로 고요했다. 다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네가 떠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발은 네가 머무르는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똑똑, 두 번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잘 정리된 방과 세워져 있는 매트리스를 상상했다. 너는 작별 인사 대신 편지를 남길 만한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방 안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들어가도 돼?”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주 느릿하게, 어두운 방 안의 풍경이 문틈 사이로 서서히 넓어졌고 나는 매트리스 위에 바른 자세로 누워 있는 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안도했던 나는, 네가 충전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충전을 하고 있다면 어디에 무언가 불이 들어온다든가, 표시가 되어야 하는데 너는 그런 것도 없이 그저 잠든 것처럼 고요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너는 잠을 잘 필요가 없고,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유 없이 누워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네 곁으로 다가가 매트리스 옆에 무릎을 대고 자세를 낮추었다. 바보같이 호흡을 확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로보?”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긴 눈, 닫힌 입술. 호흡하지 않는 너는 가슴팍이 오르내리지도 않았고 눈꺼풀이 떨리지도 않았으며 숨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마치 시체처럼. 나는 손을 뻗어 너의 몸을 흔들어 보았다. 로보. 마치 사람을 깨우려는 것처럼. 하지만 너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았다. 여전히 너는 고요했다. 내가 골목에서 너를 처음 발견했던 그때처럼.
고장 난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너를 고치려 시도할 수 있다. 그동안 온갖 잡동사니를 만지고 개조하면서 회로와 부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너와 같은 복잡한 것을 수리하거나 만져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섣불리 너를 고치려 하다가 망가뜨리는 상상은, 나를 지나치게 오싹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그런 시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되살릴 수 있는 전문가에게 데려가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너를 깨워 보려 시도할 수 있다. 나는 네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너는 그것을 싫어했으니까. 대신 나는 너의 목 뒤와 손목을 확인했다. 그곳 어딘가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 주는 단서가 있길 바라며.
다행히도 나는 너의 손목에서 작은 패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패널에는 새빨간 숫자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2%. 아마 충전된 에너지를 표시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기를 바랐다. 네가 충전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괜찮아져서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간단하게 너를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랐다.
문제는 내가 너를 충전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값이 제법 나가는 너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이 지상에서 너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아주 간혹, 운 좋게도 너와 비슷한 다른 너를 만날 수 있어도 충전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 특별한 기기가 필요할 것이다. 전선이나, 혹은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는 장치라든가, 혹은 작은 핀 같은 게 있어서 찰칵, 하고 끼우면 충전이 되는 것이라든가. 물론, 그 어떤 것도 우리 집에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너를 되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의미 없이 너를 두어 번 더 흔들었고, 네가 나에게 아무런 지침이나 안내도 주지 않았으니 어쩌면 너는 이대로 잠들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해 보았다. 너는 왜 나에게 충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98%의 너가 없어질 때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게 잃어버린 나의 내일 때문인지, 네가 영영 눈을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네가 나의 내일이었으니까. 나는 괜히 네 손목에 있는 패널을 손 끝으로 문지르며 울먹였다. 그때 패널에서 빛이 반짝였다.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렸다. 나는 팔뚝으로 눈을 벅벅 문지르고 다시 패널을 바라보았다. 네 손목에 있는 패널 아래, 무언가가 아주 작게 쓰여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그것을 더 자세히 보았다. 읽을 수 있는 문자였다. 정확히는, 숫자였다.
어떤 전화번호가 너의 손목에 적혀 있었다. 나는 당장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