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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델피나, with. 일레븐

By 민트박하 | 2026.05.10 15:02

 

 


 

 

 

 

 

  왕좌는 언제나 도전받기 마련이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케케묵은 말 외에도 왕의 자리를 탐내는 자들은 도처에 널려 있기 마련이었고 절대적인 권력자는 절대적으로 무너진다.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고 혁명 혹은 반란, 쿠데타로 몰락한 왕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영원은 없어도 평생은 존재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평생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영원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엔레타Enreta는 명실상부한 그 도시의 영원한 왕이었다. 몇 세대 동안 이어져 내려온 엔레타는, 보통의 불법적인 조직이 그러하듯 그 이름을 아는 자가 양지에는 많지 않았으나 그 도시에 발을 들인다면 또 뒷거리에서 한몫 잡아 볼 생각이라면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 두어야 하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엔레타의 보스, 델피나는 전대 보스보다 더 가차 없고 잔혹한 편이었다. 작은 그룹들은 혹시나 눈에 띄거나 거슬리게 할까 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형국이었고, 어느 정도 머리가 큰 녀석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몇 번의 암살 시도와 전쟁이 있었고, 밤이면 피가 마르지 않고 흘러 골목을 적셨다. 그는 성격이 철저하고 무엇보다 거슬리는 것을 그냥 놓아두는 성미가 아니었다. 잡초 따위를 오래 놓아두면 작물이 시원찮은 법이라고, 그는 즐겨 말하곤 했다. 보스가 전쟁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드물지만 델피나는 자신의 실력을 믿는 것인지 혹은 그저 피를 보고 싶은 것인지 직접 총을 들고 앞장서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보스의 목숨은 솔져 스무 명의 목숨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위험한 곳에까지 직접 행차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엔레타의 이름이 뒷골목에서 어떤 규칙으로 작용하는 만큼 그 보스 델피나의 이름 역시 암묵적으로 직접적인 언급은 꺼리더라도 엔레타의 그분, 이라고 말하면 누구나 델피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델피나의 개, 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이 적었다.

 

  델피나가 키우고 있는 개는,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늑대만큼 커다란 사냥개였다. 검은 털에는 윤기가 흐르고 사람을 먹이로 줘서 언제나 피에 굶주려 있는 짐승이고 델피나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개. 또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잘 훈련받은 카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엔레타에는 몇 명인지 모를 카포가 있었고, 그들을 모두 통칭하는 말이 델피나의 개, 였다. 또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퇴역 군인 한 명을 길들여서 자신의 보디가드로 쓰고 있다는 것이 되었다. 숱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는 얼굴과 온몸에 흉터가 가득하고 2m가 넘는 장신의 거구라고 한다. 델피나는 그런 소문들이 떠도는 것을 즐겼고, 한술 더 떠서 소문에 가십을 얹기도 했다. 가끔 그 ‘개’랑 자기도 한다고. 침대 위에서는 더 죽여준다고.

 

  델피나가 ‘개’를 데리고 특별히 사냥에 나설 때는, 보다 잔혹하고 끔찍한 처형으로 본보기를 보여야 할 때였다. 공포는 사람을 손쉽게 지배하고, 델피나는 그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최근 떠오르고 있다는 신흥 조직 벨루토Velluto에게 약간 경고가 필요한 시점에, 델피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직접 손봐주기로 한 것이다. 언더보스는 델피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다가오는 그믐달이 뜨는 날에, 델피나는 ‘개’를 불렀다.

 

 

  “산책 가자.”

 

 

  벨루토는 마약과 술장사로 꽤 짭짤한 이득을 보고 있었다. 자본이 생기니 조직원을 더 뽑아 덩치를 불렸고, 풋내기들답게 허세와 만용으로 머리가 돌아버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엔레타의 거래원에게까지 손을 뻗었을 리 없다. 델피나는 그런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자신의 것에 손을 대는 것. 자신의 몫을 가져가려 하는 것. ‘개’의 턱을 살살 긁어 준 다음, 짧게 지시를 내린 델피나는 몇 명의 솔져와 카포 한 명을 데리고 출발했다. 적당히 밟아 주기에 좋은 인원이었다.

 

  목적지는 지하의 불법 클럽이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눈이 아픈 조명, 그리고 보다 구석진 곳에 마련되어 있는 은밀한 즐거움을 위한 방과 방, 그리고 방. 여기 이름이 뭐였더라. 취향이 싸구려네. 델피나는 솔져들에게 짧게 웃어 준 다음 그들을 진입시켰다. 클럽 안에서 한창 즐기고 있던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고, 그렇게 중앙 홀이 비워졌다. 뜻밖의 습격에 당황한 벨루토의 조직원들은 허점을 노출했고 솔져들은 손쉽게 그들을 도륙했다. 델피나는 느긋하게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음악 소리에 섞여 비명과 총성이 울렸다. 카포가 델피나의 곁에서 호위를 담당했고, 간혹 지나치게 약에 취해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기어 나오는 몇 명을 간단히 쏴 죽였다. 진득한 피가 바닥 타일 사이로 고였다.

 

 

  “좀 시시한데.”

 

 

  이럴 줄 알았으면 ‘개’랑 같이 갈 걸 그랬어. 델피나는 농담처럼 중얼거리며 웃었고 카포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델피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컸던 그는 감히 델피나에게 말을 붙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습격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약간 안도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전투로 손해를 입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느긋하게 복도를 걸으며 옆에 있는 문 하나 하나를 열어 제끼던 델피나는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있었네.”

 

 

  통제실이었다. 클럽 내부의 감시 카메라를 전부 확인하고, 기록하고, 필요하다면 본부에 지원을 요청하거나 인력을 요구할 수 있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통제실은 비어 있었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자들이 지원 요청을 위해 달려오다가 총과 칼에 맞아 쓰러졌던 모양이다. 문 앞에까지 시체와 부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델피나는 고통에 신음하는 부상자를 흘끔 바라보고 방아쇠를 당겨 그를 편하게 만들어 준 다음 통제실 안으로 진입했다. 카포는 통제실 밖에서 주위를 경계하기 위해 대기했다.

 

  구조 자체는 단순했기 때문에, 복잡한 장비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최근 생긴 클럽이라 그런지, 버튼 하나 하나에 이름표가 붙어 있어 더욱 알기 쉬웠다. 델피나는 잠시 화면들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여 깊게 빨아들이면서, 화면에 들어오는 모습을 잠시 감상했다. 엔레타의 솔져들은 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한 명도 살려두지 말 것. 무의미한 저항으로 허공에 칼을 휘두르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벨루토의 솔져를 물끄러미 감상하던 와중,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델피나는 담배를 들지 않은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통제실 안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였다.

 

 

  “안녕. 좋은 밤이지?”

 

 

  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아마 예상한 목소리, 그러니까 통제실에 있어야 하는 조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당황한 것 같았다. 상대방은 당연히 벨루토의 본부에 있는 연락망일 것이기에. 델피나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버튼들 사이로 담배를 지져 껐다.

 

 

  “대답이 없네. 전화를 걸어 놓고 말이야.”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넌 누구야.]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성실하지 않은 모양이야. 다들 자리를 비웠네.”

 

 

  자신이 통화하고 있는 상대가 엔레타의 보스, 델피나라는 것을 꿈에도 모를 상대방은 델피나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코웃음을 쳤다. 델피나는 그 무례를 용서했다. 상대방은 약간 흥분했는지 조금 언성이 높아져서 입을 열었다.

 

 

  [어느 패밀리지. 거기 오래 있다가는 좋은 꼴 못 볼 거야. 곧 우리가 갈 테니까.]

  “오, 그래?”

 

 

  델피나는 작게 하품했다. 화면을 흘끗 보면, 이제 여기 살아 있는 벨루토는 없었다. 솔져들은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거나 탄환을 채워 넣는 등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굳이 시체를 치울 필요는 없었기에, 숨은 통로나 비밀 방이 있는지 등을 수색하고 있는 그들을 확인하고 델피나는 한가롭게 자신의 손톱을 들여다보며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네?”

  [뭐?]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쾅, 벽을 세게 두드린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폭발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였다. 전화기 너머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델피나는 낮은 웃음을 흘렸고, 상대방은 당황한 목소리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황을 묻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쾅, 하는 소리가 났다.

 

 

  “듣고 있어?”

  [제길, 뭐야!]

  “별거 아냐. 우리 강아지가 인사 갔으니까 잘 대접해 줘.”

  [무슨…….]

 

 

  그리고 와지끈, 하며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다음에는 비명, 비명, 다시 비명. 질척하고 끈적한 소리가 났고, 천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도 났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를 델피나는 거슬리지도 않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상했다. 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왔지만, 곧 하나씩 하나씩 잠잠해졌고, 마침내 고요해졌다. 철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고, 수화기 너머로 쌔액, 하는 숨소리가 들려오자 델피나는 만족감 가득하게 미소 지었다.

 

 

  “정리 잘 했어?”

 

 

  상대방은, 잠시 호흡을 고르다가 낮게 대답했다.

 

 

  [……응.]

  “그럼 집으로 와. 칭찬해 줄게.”

  [……응.]

 

 

  델피나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포가 문을 열어 주었고, 델피나는 솔져들을 소집한 다음 보고를 받았다. 구두 밑창이 피로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솔져들에게 짧은 명령을 내린 다음, 클럽 밖으로 나온 델피나는 구두를 갈아 신었다. 대기하고 있던 엔레타의 인원 몇 명이 델피나를 모셔 가기 위해 차 문을 열어 주었다. 델피나는 리무진 뒷좌석에 길게 늘어진 채 핸드폰으로 통화했다.

 

 

  “일레븐은?”

  [지금 데리러 가는 중입니다.]

  “오늘 수고했으니까 고기 좀 준비해 둬. 장난감도.”

  [예.]

 

 

  벨루토의 본부에 혼자 잠입한 일레븐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생존자는 없을 것이고, 그 현장은 찢어지거나 부서진 시체와 피, 살점으로 가득할 것이다. 돌아가서 예뻐해 줘야지. 일레븐이 알았다면 질색할 생각을 하며 델피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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