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 Doe
By 민트박하 | 2026.05.05 23:54
🎵 Background Music
🔄 무한 반복 ON
어차피 끝날 거라면 그 끝까지 있는 힘껏 달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어차피 추락할 거라면 양팔을 잔뜩 펼치고 뛰어내려도 좋을 것 같아. 결국, 끝장이 날 거라면. 결국 이것도 저것도 전부 끝이 나 버릴 거라면 그 끝이 올 때까지 잔뜩 즐길 수도 있는 거잖아. 끝날 거라면, 끝장 날 거라면, 끝이 나 버릴 거라면. 결국 끝이라면.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될 거였다면.
경동맥을 찌를 거라면 시퍼렇게 날이 잘 든 칼도 좋겠지만 새빨갛게 녹슨 칼도 나쁘지 않잖아. 머리에 총을 맞을 거라면 뒤통수에 맞든 관자놀이에 맞든, 입 안에 쑤셔 넣어진 채 맞든 아무 상관 없는 거잖아. 목이 잘릴 거라면 단두대에 엎드리든 작두에 엎드리든 차이는 없잖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렇게 끝나게 될 거라면.
마지막으로 한 번쯤은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얼마나 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달리고 있었는지, 걷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어. 밤이었을까? 아마 그랬을 거야. 우리는 보통 해가 없을 때 일을 하니까 분명 그때도 밤이었을 거야. 그런데 달이 보이지 않았어, 건물이 너무 많아서 그랬나 봐. 이런 곳에서는 하늘을 보기가 힘들지. 높은 건물 때문에 전부 파먹힌 하늘은 사실 봐도 별로 상쾌하지 않아. 사실 고개를 들 기운도 없었어, 걷는 것조차 힘들었거든. 그래서…… 밤인지, 새벽인지. 동틀 녘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 몸은 이미 어느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넋만 빠져나와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몰라. 모든 게 혼미했어.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어. 당신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이상하지, 분명히 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보러 가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이상하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던 당신의 얼굴이 기억나. 아무래도 이런 꼴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경찰이나 119에 신고를 했어도 진작 했어야겠지. 하지만 당신이 놀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 작전을 당신이 몰랐을 리 없으니까.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어쩌면 당신은 내가 안 죽고, 그곳에서 체포되지 않고 잡히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에 대해 놀랐는지도 몰라. 물어볼 수는 없었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거기까지 간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해. 집념 같은 거였을까. 집착이었을까. 어떻게든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는 심술이었을지도 모르겠어. 당신의 반응이 궁금했거든, 언제나처럼……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 줄 것 같아서. 그렇게 기어이 본 당신의 얼굴은 꽤 만족스러웠어. 재미있었냐면……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만족스러웠어.
이제 누가 오해하든 상관 없어. 그렇지?
새삼스럽게 무언가를 약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놀던 나이도 한참 지났지만, 꿈을 꾸기에도 그 꿈을 돌이켜 떠올리며 아쉬워하기에도 그리워하기에도 어울리지 않지만. 한 번쯤은, 아니, 어쩌면 항상 그런 걸 그리워했는지도 몰라. 아무것도 내던지지 않아도 괜찮은 생활을. 소중하게 여기면 반드시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아무것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삶 대신, 평범하게 무언가를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다정히 대해도 괜찮은 그런 삶을 꿈꾸었는지도 몰라. 아마 그랬을 거야, 꿈을 꾸는 것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해?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라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빛을 머금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보통은 그런 걸 주제넘다고 해. 감히, 분수도 모르고, 라고 해. 집에서 나와 골목길을 전전할 때 이미 함께 두고 나왔어. 그런 걸 바라기에는 너무 더러운 삶을 살아 온 탓이야. 다정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에게 다정하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한 번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마지막에 눈에 담는 게 당신이면 했어. 어쩌면, 복수하고 싶었던 걸까? 나를 이런 꼴로 만든 당신에게. 모르겠어. 생각할 기운도 없는걸.
처음부터 전부 틀려먹은 사이였잖아.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데, 그래도 나는 당신을 지나치지 못했을 거야. 당신에게서 멀어지지 못했을 거야.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했을 거야,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재밌었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참 즐거웠어. 이런 식으로 끝날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어. 여러 가지 마지막을 생각해두고 있었거든. 그 중에 하나일 뿐이야. 당신을 보러 오는 건…… 그 중에 하나도 없었지만. 결국 여기 있네, 나는. 왜였을까, 달아나거나 숨는 대신 이곳으로 온 이유가 뭐였을까. 마지막이니까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을 느껴? 나는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 당신이 영원히, 생각했으면 좋겠어. 영원히…….
……아냐, 잊어버려도 괜찮아.
당신이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항상 궁금했어. 입 밖으로 내뱉는 말과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같을까 궁금했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게 그냥 전부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응, 정말로 나쁘지 않아.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거, 그게 항상 그랬던 것 같아. 최고가 될 수는 없어서 최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아냐, 이미 늦었어. 피가 너무 많이 흘렀는걸. 별로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말했잖아,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 게 당신이었으면 했다고.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봐. 안 알려 줄 거니까. 맞아, 사실 나도 모르겠어. 왜 당신이었을까, 하필? 왜 하필 당신이고, 왜 하필 나였을까? 왜 하필 지금이고, 왜 하필…… 우리였을까. 당신도 나도 운명 같은 건 믿지 않잖아. 모든 게 전부 정해져 있던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어떤 의미를 굳이 부여하고 싶지도 않아. 세상 일이라는 게, 꼭 논리적이지도 않고 운명적인 것도 아니잖아. 당신도 잘 알잖아.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 좋게 사는 사람이 있고,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사람이 살아 있기도 하고,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그런 거에 전부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제정신으로는 살 수 없게 돼.
추운데, 이상하게 따뜻해. 당신 집 앞에서 눈을 감으면 곤란할까? 어쩔 수 없지. 난 언제나 당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쪽이었잖아. 이상하게 웃고 싶네. 당신 얼굴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당신은 모를 걸. 거울 가져다 주고 싶어. 재미없는 반응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좋네. 응, 나쁘지 않아. 있잖아, 아까 했던 말. 그냥 다 잊어버려. 알았지? 헛소리였다고 생각해 줘.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아무 말이나 한 거였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보고 싶었어.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어. 응, 보고 싶었어. 당신을 생각했어. 어쩔 수 없잖아. 달리 찾아갈 곳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걸. 그냥 당신이라면…… 이렇게 해줄 것 같아서. 응. 옷 더러워지는데 괜찮아? 난 상관 없지만. 그래, 형사가 옷에 피 좀 묻는 게 대수겠어. 자주 있는 일이잖아? 나도 그랬고. 피 냄새 따위는 익숙하잖아. 이런 몰골의 인간도, 못 봤던 거 아니잖아. 자주 봤지? 그러니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어차피 그렇게 끝나게 될 거라면 마지막이 정해져 있다면. 그 과정은 내 마음대로 채워도 상관 없는 거잖아, 내가 어떻게 발버둥치고 벗어나려 해도 소용 없는 거라면, 내가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 없는 거라면 차라리 있는 힘껏 즐길 수도 있는 거잖아. 결국 정해진 레일을 달려 절벽에서 떨어지게 될 거라면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까지 악기를 연주한 그들처럼 차가운 바닷물에 빠지기 전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도 되는 거잖아.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든, 마지막 만찬을 즐기든, 아무도 없는 플로어에서 왈츠를 추든……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은지 나도 몰랐어. 어차피 할 수 없을 테니까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 생각해봤자 소용 없잖아. 착각하게 될 뿐이잖아.
후회하지 않아.
오래 잠들 거니까, 영원히 자게 될 거니까 마지막으로 어떤 꿈을 꾸고 싶은지 정도는 빌어도 괜찮잖아. 진짜 그런 꿈을 꾸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바라 볼 수는 있는 거잖아.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결말이라서 좋았어. 무엇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끝이 날 걸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어……. 원래 이 바닥 인간들이 좋게 떠나는 경우가 더 드물기도 하고. 나 정도면 꽤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당신 앞에 와 있잖아……. 사실 못 올 줄 알았어. 와도 만나지 못할 줄 알았어. 만나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상관 없었어. 마지막으로 한 번쯤 바라 볼 수는 있는 거잖아. 그래서…… 응. 좋아. 얼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사람 곁에 있어 주지 못했어. 그 사람, 마지막까지 나를 무척 찾았을 텐데. 내가 구해 주길 바랐을 텐데 난 그러지 못했어. 착한 사람은 정말 싫어…… 다정한 사람도 질색이야. 끔찍해. 멋대로 파고들어서 멋대로 흔적을 남기고 멋대로 떠나가는 그런 거 정말 싫었어. 누구도, 아무것도 담고 싶지 않았어. 아무것도 없는 게 좋았어. 아무것도…….
―깨진 유리 위를 맨발로 걸어. 아플 때마다 피가 흘러. 있잖아, 그 붉은 발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검게 변하기 전에 만나러 와 줘.*
나는 당신이 정말 싫었어.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응, 당신이 정말 싫어. 그래서…… 좋았어.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지 않을 걸 알고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어. 당신이, 그때 만난 사람이 당신이라서 다행이었어. 당신이…… 좋았어. 그랬던 것 같아.
―라면서, 조금, 꿈을 꾸고 말았던 것 같아.*
나, 당신이.
…….
* 요네즈 켄시 & 우타다 히카루 - Jane Doe 中
가사 일부 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