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Gloomy Day

Aumalum2. 미션로그

By 민트박하 | 2026.05.07 21:09
🎵 Background Music 🔄 무한 반복 ON


 

 

 

 

      피… 붉은 눈, 잡아 먹히는 인간들. 붉은 피와 비명소리, 어디서… 아이의 울음 소리 같은 높고 작은 소리가. 작지만 충분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로. 우는 아이와, 쓰러진 사람들과… 사방이 붉고, 비린내가 난다. 유황불이 없다 뿐이지 이 곳은 마치 지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지옥은 있어도 천국은 없고. 천사는 인간으로 분하였고 악마는 천사로 분하였으므로. 그리하여 인간이 천사의 손에 죽었으므로 남겨진 인간은 모름지기 악마의 모습을 하여 천사의 목을 쳐야 한다. 마티유는 굳이 충동을 억누르지 않았다. 붉은 눈을 한 동족이 인간의 배에 고개를 틀어박고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되도록 갈증을 채우고 있었다. 게걸스러운 소리가 났다, 비린내가 코 끝으로 훅 풍겨오는데 그리 목이 마르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에게 인간의 피는 충분히 달콤하지 않았다. 동족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가면을 조금만 위로 끌어올린다. 오직 드러난 입으로 모든 것은 충분했다. 고개를 숙인다. 어디에도 천사는 없고, 죽어가는 인간과 죽어가는 악마 뿐이다……. 우리가 더 이상 안주할 곳은 없었다. 오래 전에 빼앗긴 것들만을 추억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낙원으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신이 우리에게 그 어떤 음성도 문자도 내려주지 않은지, 꽤 되었다. 우리는 버려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니 덕분에 자유로웠다.

 

 

 

      …스쳐지나가듯 마주친 눈은 분명히 당신의 것인데.

 

      이상하다, 눈이 마주쳤을리가 없는데.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구멍조차 없는 온통 매끄러운, 낯선 가면을 쓰고 있는 당신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인다. 유령 같은. 그러니까, 말 그대로 유령 같은. 이 곳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흰 머리카락이 가면 위로 흐트러지면서 당신은 정말 이상해 보인다. 가면을 입술 위로 밀어올리고 낯선 누군가의 목줄기에 이를 박아 넣은 채 피를 마시고 있는 당신은 분명히 어떤 익숙함이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문득 당신과 내가 이 세계에 오직 둘만이 남겨진 것 같은 정적이 찾아온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다. 당신 역시 나를 알고 있다. 과거의 잔상이 현재의 시야 위로 겹쳐진다, 나는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무언가에 떠밀리듯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당신은,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을, 마치 끌어안듯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을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당신에게 안겨 있던 자는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듯 팔다리가 두어번 움찔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입가와 턱, 가슴, 손이 온통 붉었다. 당신은 가면으로 얼굴 전부를 가렸다. 다급하게 움직인 손가락이 흰 가면 위로 붉은 자국을 남겼다. 이상하다, 당신이 나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려고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당신은,

 

      나의 천사, 혹은 악마. 당신은, 뒤로 돌아 달아나기 시작한다. 당신의 뒷모습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았다. 이상하다. 한 걸음을 크게 옮긴다. 쓰러져 있던 사람의 팔을 잘못 밟아서 나는 바닥에 호되게 넘어졌다. 무릎과 손바닥이 얼얼하게 아려오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 잠깐 눈을 뗀 사이,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앞으로 달려간다. 당신이 곧 나타날 것 같다고,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의 뒤를 쫓는데 사방에서 피가 튀어 나를 덮쳤다, 세상이 붉었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당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신이 어디로 달아났을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나는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손에 빼어 들고 있는 검이 무거웠다. 검을 팽개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훨씬 가벼운 몸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다 해도 당신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어서 머리가 터져버릴 듯 답답하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당신을 알고 있다. 당신 역시 나를 알고 있다. 그 증거로 당신은 나를 보자마자 달아났다. 임무는 시민을 위하여 뱀파이어를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것이었지만 모든 것이 하얗게, 아니, 붉게 잊혀졌다. 피가 흘렀다, 바닥으로, 그리고 몸 위로. 이성을 잃은 뱀파이어가 붉은 눈을 하고 달려들어 방해를 받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뺀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손에 들고 있는 성물은 충분히 효과적이다. 상처를 노리고 달려드는 뱀파이어의 가슴팍에 검을 꽂아 넣는 것은 쉬웠다, 이성을 잃은 그들은 짐승처럼 움직였다. 피에 미쳐서 이성을 잃고 당장 한 모금을 취하면 만족스럽게 그르렁거렸다. 살을 뚫고 근육을 헤집고 뼈를 끊으며, 한 사람의 체중이 검에 실리고 뜨끈한 습기가 얼굴로 훅 퍼졌다. 피가 흘렀다. 목을 베지 않으면 뱀파이어를 죽일 수 없었기에 손목을 비틀어 검을 뽑고 양 손으로 검을 고쳐 잡은 다음 목을 베었다. 단면으로 튀는 피가 붉었다. 손바닥이 쓰라려 문득 내려다보면 방금 전 넘어졌을 때 온통 엉망으로 벗겨진 붉은 속살이 보인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온 몸이 엉망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젖었고, 상처투성이였고, 넘어졌을 때 잘못 삔 발목이 욱씬거렸고 손바닥은 부어올랐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찾아오는 허망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고. 누군가 목을 물리고 누군가 죽어가고 누군가는 울부짖는다.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를 볼 때마다 머리 한 쪽 구석으로 밀어넣었던 기억이 어두운 곳에서 슬그머니 손을 뻗는다. 점차 숨통을 조르려 스멀스멀 다가오는 그것을 몇 번이나 베어냈지만 그림자를 잘라낼 수는 없어서 매 번 붉은 색을 볼 때마다 나는 당신을 떠올렸고, 그 날을 떠올렸고, 혼자 남겨져 고요히 침대 위에서 호흡하던 시간을 떠올렸고 하염없이 흐른 시간과 차갑게 식은 무덤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뱀파이어를 죽였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피를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아직 당신을 그리워 해야 하는지 증오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감정의 발목에 사슬을 묶어 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조리 떠오르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모든 바다가 말라붙고 모든 산맥이 내려앉는 그런 날이 결국은 오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었다. 당신 역시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찾아야 했고, 당신을 마주해야 했고, 당신을 잡아야 했다. 목적지를 잃은 감각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반쯤 달리듯이 걸어간다, 걸음이 온통 붉어서 나는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당신은 나에게 해 주어야 할 말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반드시 들어야 했다. 최소한 당신이,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목이 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에 비상 명령을 받고 출동한 것도, 그 어떤 임무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우울과 모든 불행과 모든 그림자의 근원이 지금 여기 있는 것 같아서, 지금 그걸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신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도 나는 당신을 하염없이 쫓아 지옥 같은 세상을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폐가 잔뜩 조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목에서 비린 맛이 났고 숨이 달았다. 눈이 먼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헤집고 다녔다, 붉은 눈과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당신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찰나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손을 쓸 수 있었다. 갖춰 입은 전투복이 흠뻑 피로 젖었다, 그게 나의 피인지 다른 누군가의 피인지는 이제 잘 모르겠다. 설령 몸의 모든 구멍과 이제 생겨난 모든 새로운 상처로 피를 쏟고 죽어버린다 하여도 나는 당신을 찾아야만 했다. 당신을 찾아서, 확인해야 했다. 당신이 그 사람인지, 그 사람이 당신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부서져서 내려앉은 폐허라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더 망가질 것이 있었다. 당신은 기어이 그것을 부수러 왔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무너져야만 했다. 당신을 찾아서, 눈을 마주하고,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미친 듯이 뛰는 심장으로, 금방 까맣게 물들어가는 머리로, 하얗게 터져나가는 시야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당신은 나에게 잘못이 있었고 나에게 사과를 해야 했고, 나에게 빚이 있었다. 당신은 나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 식으로 사라졌던 당신에게 받아야 할 것이 아주 많았다. 당신은 그렇게 쉽게 사라져서는 안 되었고, 지금까지 나를 혼자 버려 두었던 이유를 말해야만 했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나에게 책임을 져야 했다. 그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당신은 가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었는데, 그렇게 했으니까.

 

 

 

 

 

      이성을 잃은 뱀파이어가 붉은 눈을 하고 폭주하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에 뛰쳐들어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고 지나가는 인간의 목덜미를 움켜쥐어 물어뜯었다. 붉은 피가 터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피를 흘리는 인간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마저 죽지 못한, 갓 죽어가는, 생 피를 빨아 먹느라 고개를 처박고 정신없이 헐떡이는 뱀파이어의 머리를 노려 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피하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헤치고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를 것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검을 들었다. 탄환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검이 있으니 어떻게든 임무는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망가져가는 나날이다,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당장 수습할 수 없었기에 걸음을 계속 앞으로, 옮겨야 했다. 어린 아이가 울었다, 엄마를 찾으면서.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 높여 우는 아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뱀파이어의 앞에 간신히 끼어들 수 있었다. 팔을 내어주면 옷감을 뚫고 이가 파고들었다. 물린다는 것은 이런 감각이구나, 싶었다. 코 끝으로 스미는 피 냄새에 취한 그의 목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긴다. 피가 터지고, 아이는 놀랄 정신도 없이 계속 울고 있다. 아이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어떤 남자가, 달아나면서 다급하게 아이를 안아 올리고는 모든 사람들이 대피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 맴돈다. 비어 있는 공간에서, 피로 젖은 길 위에서.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었는데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린 팔이 욱씬거렸다, 물리는 것 정도로는 변이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응급처치를 할 시간도 없이 걸음을 옮긴다. 왼 팔은 몇 번 더 미끼로 써먹을 수 있겠다. 피가 배어나와 옷을 적셨다. 붉은 악취에 짐승들이 꼬인다. 미끼로 던져진 것 같다. 이대로 이빨과 발톱에 갈기갈기 찢길 고깃덩이가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맹독을 품은 미끼였으면 한다. 온 몸에 온 혈관에 독이 배어 있었으면 한다. 죽음이 가깝다, 지나치게. 살아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이 곳이 이미 지옥인 것 같다.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가늠할 수도 없다. 다시 현장의 한가운데로 돌아가야겠지만 나는 당신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한 발자국도 옮길 수가 없다. 한없이 달려왔는데 잘못된 방향이었을까. 옳은지 그른지를 아무도 일러 주지 않았으니 끊임없이 헤맬 뿐이다. 멀리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백 년 뒤의 당신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비스듬히 늘어뜨린 검 끝에서 검붉은 피가 한 방울씩 맺혀 떨어진다.

      갈 수 있는 곳도,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쓰러진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죽어가는 그를 어찌 도울 방법이 없다. 사방이 고요하였고 모든 비명이 아득히 멀었기에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내렸다. 헐떡이는 그는 뱀파이어에게 몇 번이나 물어뜯겨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쪽 귀와 뺨이 떨어져 나갔고, 목덜미와 어깨, 팔. 피로 젖은 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나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온전치 않은 붉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을 잡았다.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반은 숨결 같았고, 반은 신음 같았다. 그는 나에게 울먹이며 물었다.

 

       …신은 어디에 있죠?

 

      그의 눈은 검은색이다. 눈꺼풀 사이로 투명한 눈물이 맺혀 굴러 떨어진다. 일그러지는 얼굴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 하여 나에게 묻고는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두었다. 붙잡고 있는 손이 아직도 뜨거웠다. 얼룩진 얼굴 위로 손을 올려 그의 눈을 감겨 준 다음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당신은 천국에 갈 것입니다, 신이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신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당신의 정원에 심으시니 그 곳은 향기롭고 평화롭겠지. 마침내 쉴 수 있기를. 당신은 드디어 이 지옥을 떠나 영원히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짧은 추도문을 외우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대고 있던 무릎이 욱씬거려 내려다보면 찢어진 옷감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살아 있으므로, 기어이 살아 있으므로. 시체와 부상자가 나뒹구는 길바닥에 온통 피가 흥건하다. 붉고, 붉어서. 모든 것이 붉기만 해서.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 눈 앞이 흐릿해서 손등으로 닦아내려 손을 올리면 어깨가 쑤셨다. 손목으로 문지르면 오히려 손목이 화끈거렸다. 아직 당신을 찾지 못했다, 당신을 찾아야 하는데. 걸음을 옮기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서 문득 고개를 내리면 한 손에 쥐고 있는 검이 늘어져 바닥을 긁고 있었다. 검날을 닦지도 못하고 검집에 넣는다. 허리춤이 무거웠다, 리볼버의 탄창은 진작에 비어 있었다. 빈 총과 이 빠진 검을 들고 피에 젖은 길을 배회하다니 유령은 당신이 아니라 나인 것 같다. 그러니까 당신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죽었어야 했는데. 그 때, 당신은 내 목덜미를 마저 물어줬어야 했는데. 그 때부터 버려져 있던 이 몸뚱이를 어디로 뉘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때 죽었어야 했는데 모두가 나를 두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나에게서 등을 돌려 멀어진다, 이 지옥에 나만 남겨진 것 같다. 그러니까 지옥에 있는 나는 당신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서야 버려졌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어. 잘 하고 있는 건지, 잘못 하고 있는 건지. 벌을 받고 있는 건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서 나는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에 떨면서 이게 옳다고, 이게 맞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면서. 틀리지 않았다고 중얼거리지만 사실은, 옳고 그름을 따질 것도 없이 처음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 있었음을. 그러므로 그 무엇도 의미 없었음을. 나는 또 한 번 버려진 기분이 든다. 당신은 끝내 나를 보지 않았고, 나를 생각하지 않았고.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힘껏 달렸는데,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는 것이 어느새 흐느낌으로 뒤섞인다. 눅눅하게 젖어들어간다, 눈 앞이 흐려져서 더 이상 뛸 수가 없다. 어딘가를 헛딛고 내팽개쳐지듯 넘어진다. 손가락 하나 쯤은 삔 것 같다. 젖은 바닥이 피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몇 번이나 넘어졌더라. 사방이 고요했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었어요. 누구도 듣지 않았으니까.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온 몸이 너덜했다. 나는 당신에게 받아야 할 게 있는데 당신은 내 생각은 조금도, 해 주지 않고 달아났다. 나는 몇 번이나 버려지고 버려지면서 이제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제 와서 내려놓자니, 그렇게 내려놓고 나면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을텐데. 그렇게 비어 있는 곳에 결국 무엇도 채울 수 없을 텐데. 당신을 쫓는 순간 지난 시간들이 모조리 부서져 흩어졌다, 나는 열 세살로 돌아간 것처럼 눈물이, 넘쳐서. 기어이 터져버려서.

 

 

 

 

 

 

 

      가면 안쪽에서 뱉은 숨이 맴돌아 코 끝으로 비린내가 선명하다.

 

      한참을 달아났는데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 하염없이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가장 익숙한 가장 지저분한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티유는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 가면을 벗었다. 가면 안쪽 면에 입가에서 옮겨 묻은 붉은 피가 흥건했다. 숨이 거칠었다, 호흡을 안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면서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붉게, 번져 나가는 얼룩이. 도려낸 과거가 다시 송곳처럼 머리를 찌른다.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 그 곳에 있었다. 항상 끔찍한 순간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저주라도 받은 걸까. 삼켜낸 피가 뱃속에서 울렁거려 결국 고개를 숙이고 전부 게워낸다. 입 안이 비리고 쓰라렸다. 위액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듯 아팠다. 목 언저리를 손으로 쥐어 문지르면 붉고, 붉은, 얼룩이. 자꾸만 옮겨 묻어난다. 굳이 닦아내지도 씻어내지도 않았으니 곧 온 몸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얼룩진 손바닥을 문득 내려다본다. 그 눈을 알고 있었다,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버린 시간이 되돌아와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미 다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튀어나와서는 발목을 잡아챈다.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이렇게 마주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나를 알아봤을까. 천천히 호흡이 진정되었으나 심장은 계속 미친 듯이 뛰었다. 나를 알아봤을까, 가면으로 반절 이상 가려져 있었는데 알아봤을 리가 없다. 그런데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티유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변했는데 알아봤을리가. 흰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머리카락 뿌리가 당겨지면서 얼얼한 느낌이 확 퍼졌다. 알아봤을 리가 없어. 중얼거린다. 확신을 더하기 위해. 그렇지만, 그 표정. 그 눈, 그 얼굴.

 

      아직 지워지지 않은 마음이라도 남아 있었던 것인지. 손바닥이 벗겨지고 피가 배어 나오도록 지문이 희미해질 때까지 문질렀는데 낙인은 사라지지 않고.

 

 

 

 

 

      아니, 너는 나를 모른다. 마티유는 가면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 안에서 맴도는 차갑고 단단한 감촉으로 중얼거린다. 너는 나를 모를 것이다, 몰라야 한다. 너는 나를 모를 수 밖에 없다. 한없이 중얼거린다. 잊으려 했지만 한 번도 잊지 못했던 이름과 지우려 했지만 조금도 지우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마티유는 몸을 웅크렸다. 칼에라도 찔린 것처럼 몸이 뜨거웠고 차가웠다. 너는 나를 모른다. 중얼거린다. 그 무엇도 더 이상 그에게 의미 있어서는 안 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왔으므로, 이 역시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입술을 깨문다. 그러나 나는 너의 이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너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너는 나를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숨이 막힌다. 버리려 했지만 버리지 못한 것들이 되돌아와 짓누르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도 아니게 되었으므로 너 역시 나를 무엇도 아님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너는……. 숨이 막혔다. 모든 것이 한없이 역겨웠다.

 

 

SERIES

‘창작’ 에피소드 목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