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싹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인간이 너를 창조했다면
※ 허블 사무소 소속 스코시즘 로보 프로스터 2차 창작
※ 개인 해석 및 날조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인간이 너를 창조했다면, 인간은 신과 같은 반열에 든 것일까? 생명을 창조한 신과 같이 인간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된 걸까? 너와 나의 구성 성분은,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게 크게 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에너지, 어떤 동력원, 어떤 힘인데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의 위장에서 소화해 낸 음식물로부터 얻어낸 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꾼 것이고 내가 음식물을 소화하는 건 네가 태양열이나 수력이나 풍력 같은 수단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네가 완전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감정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인간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탱하는, 마음이라든가, 그런 것이 너에게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쪽이었다. 너는 생각할 줄 아는 존재였고, 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존재였으며, 자극이 입력되면 그것에 대한 반응을 산출해 내는 존재였다. 그것은 내가 무엇인가 자극을 받았을 때 반응을 내보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네가 시스템으로 설정되고 계산된 값은 출력할 수 있어도 입력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이라는 건, 결국 입력된 값을 내장된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고 출력한 결과밖에 보여 줄 수 없다고. 그런데, 나는 그게 꼭 너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너의 전기 회로를 나의 뇌세포로 치환하면 우리는 비슷한 전기 자극으로 입력된 값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산하여 출력, 즉 반응하는, 같은 절차를 거쳐 표현을 한다. 너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좋다고 말하고 싫은 것에 대해서는 싫다고 말하며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너에게 제대로 된 주인이 있었다면, 그러니까 너를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무단 폐기하기 전에 너를 법적으로 제대로 소유하고 있었던 주인이 있었다면 너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면서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그 외의 다양한 일을 해내기도 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부모라든가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따라야 하는 존재’, ‘가르침을 주는 존재’처럼 인식하고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누군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서 나는 너의 주인이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말을 무시했을 테고 아마 너도, 창조된 직후 너를 창조한 자가 이제부터 너의 주인은 이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눈앞에 대뜸 나타난 아무나를 주인으로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의 눈동자 색을 확인하고 싶어 눈꺼풀을 들춰 올리려 할 때 거부한 것만 봐도 그렇다.
내 견해는 그렇다. 너는, 그리고 너의 다음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너와 또 다른 너와 계속해서 더 나아지고 개선되어 창조된 너는, 나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너의 몸에 있는 몇 가지 특징이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너는 나라든가 다른 인간들과 거의 구분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너와 또 다른 너는, 그리고 또 다른 너와 너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곳에 바코드 같은 표시를 하고 있었지만 들려 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런 표시를 불법으로 지우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는 모양이다.
저 깊은 바다 아래에, 견고하게 지어진 해저의 도시에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은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 대부분은 가장 처음 마련한 너를 고장이 나면 고치고 고쳐 가면서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하면 사용했지 새로운 너를 살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이런 곳에 불법으로 너를 버리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어쩌면 그들 중 몇 명은 저 아래 해저 도시에서 살다가 지상으로 쫓겨난 사람일 것이고 그들 중 몇 명은 버려진 게 아니라 저 해저 도시에서 탈출해 여기로 온 또 다른 너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눈에 띄는 표시가 보이지 않아 그런 것을 한눈에 알 수 없다면 암묵적으로 그런 것을 묻지 않는 게 예의가 되었다. 그러니까, 여기 불법으로 버려져 있는 너도, 어쩌면 저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쳐 나와 바깥으로, 이 지상으로, 이 버려진 땅으로 올라온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네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매일 외출할 때마다 너를 봤다. 너는 그곳에, 눈이 쌓여 있던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마치 지쳐 잠든 것처럼 늘어져 있었다. 다시 눈이 왔고, 네 위로 또 눈이 쌓였고, 그 다음날은 해가 제법 괜찮게 떠서 눈이 녹았다. 도로는 지저분하고 흙먼지도 많아서 하얗게 쌓여 얼어붙었던 눈은 녹아 흙탕물이 되었고 너는 그곳에 계속, 더럽고 지저분한 흙탕물에 옷이 젖든 말든 눈이 쌓였다가 얼었다가 녹든 말든 계속, 있었다. 버려진 곰인형 치고는 존재감이 상당했기 때문에 나는 외출할 때마다 너를 봤고, 귀가할 때마다 너를 봤다. 그러다가 결국 하루는 다시 네 앞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전의 너는, 눈을 감고 있는데도 너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보려는 나의 손목을 정확히 잡아냈고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고 ‘하지 마’라고 말했으니 너는 내가 네 앞에 웅크리고 앉아 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너의 눈동자 색이 궁금했고, 너는 죽은 것처럼 잠든 것인지 잠든 것처럼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손을 뻗어 네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다가 손목이 붙잡힌 채 한참 씨름하는 것은 원치 않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 그렇게 있었다. 네가 먼저 눈을 뜨거나 말을 걸어 주거나 무엇이라도 반응을 보여 주길 기다렸지만 너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계속 흘렀다. 나는 다리가 저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에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네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 추운, 눈이 내리는 날에 나는 너를 보고 새싹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분이 그랬다. 땅에 떨어진, 아주 낯선 곳에서 날아온 씨앗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씨앗인지 알 수 없어 섣불리 물을 줄 수도 없고 다른 흙이 있는 곳에 묻어 줄 수도 없는, 이렇게 방치해도 괜찮은 건지 아니면 다른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나는 그 씨앗이 싹을 틔우기를 바라고 있었다. 바람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너의 발목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너는 키가 상당히 크고 다리도 길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도 네 얼굴은 꽤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은 손 뻗으면 닿을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알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과 같지는 않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던 것 같다. 나는 점점 네 앞에 웅크리고 앉아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십 분 정도였던 게 나중에는 한 시간, 두 시간이 되었다. 두 시간 동안 나는 다리가 저리면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듯 무릎을 짚고 하나 둘, 하나 둘, 무릎을 접었다가 폈다가 다시 웅크리고 앉았고 너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 씨앗은 황량하고 척박한 이 환경에서 얼어 죽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하얀 입김을 입술 사이로 뱉어내며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하아.”
너의 한숨에는 하얀 입김이 없었다. 너는 체온이라고 할 만한 것이 특별히 없기 때문에 그렇다. 너의 몸 안에는 계산을 하고 입력된 자극을 처리하고 출력을 위해 작동하는 온갖 장치가 있었지만 동시에 그 장치들을 적절한 온도로 냉각하는 장치도 있었기에 너의 피부는 나의 것보다 부드럽고 매끈하고 말랑해도 너에게는 체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너의 한숨은 투명했고, 나는 소리로 너의 한숨을 알아차렸다. 너는 눈썹을 조금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아주 미묘하게 변한, 하지만 꼼짝도 않았던 이전과 비교했을 때는 제법 크게 변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게 옳은 순서였던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의 눈동자 색을 보고 싶다고 눈꺼풀을 향해 대뜸 검지를 내찌르는 것이 아니라, 인사를 건넨 뒤 이름을 밝히는 것,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각자에게 용건이 있다면 용건을 말하는 것. 그렇지 않다면 상태나 안부 정도를 물어보는 것. 그게 처음 만난 사람과 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렇게 해야 비로소 다른 것들이 가능한 것이었다. 태초의 너는, 아마 그런 식으로 프로그래밍 되었거나 학습했거나 혹은 명령을 받았기에 그런 절차를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너의 성격이 그런 것에 특별히 의미를 두는 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이제야 조금,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볼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나는 이제야 너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너는 느릿하게, 사실은 그렇게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을 떴는데, 아마 내가 그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고 그 뒤에 숨어 있던 눈동자가 드러나 나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을 무척 고대하고 있어서 집중하면서 바라보고 있었기에 느리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너는 아주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눈을 떠서 나를 바라보았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너의 눈은 갓 싹을 틔운 여린 잎의 연두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