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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 2026.05.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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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블 사무소 소속 스코시즘 로보 프로스터 2차 창작

※ 개인 해석 및 날조








배의 모든 부분을 교체한다면, 그 시점에서 배는 여전히 원래의 배와 같은 배라고 할 수 있는가?

배의 부품을 모두 교체하면서 원래 부품을 모두 창고에 두었다가, 모두 교체한 뒤 창고에 모인 부품으로 배를 하나 조립했다면, 무엇이 진정한 ‘원래 배’인가?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백업된 너는 겉보기에는 물론이고 가지고 있는 기억 또한 원래와 다른 점이 하나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소한 마모까지 모두 재현해 낸 너는 원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네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기억하는 나는, 내 눈 앞에 있는 너를 원래의 존재라고 인식하기가 어렵다. 얼굴을 보면 그 순간이 계속 생각난다. 눈을 들여다보면 그때의 고통이 다시 찾아온다. 손을 뻗어 보지만, 닿기도 전에 거두어 버린다. 너에게 닿으면, 그래서 그 실제를 느끼면 내 기억 속에 있는 원래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차마 손을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다. 너는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본다. 너의 그 시선이 나는 다시 괴롭다.


비극적인 사고로 완전히 망가졌던 너는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났고 백업된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다시 태어난 너는 여전히 로보 프로스터인데, 나는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부품이 교체되고 모든 부분이 사라졌다가 새 것으로 바뀐 너는, 정말 원래 그대로의 너일까? 네가 우리가 함께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고, 모든 순간을 추억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나는 왜 너를, 원래의 로보 프로스터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까? 네가 처음 눈을 떴을 때, 너는 놀랐을 나를 걱정해서 가장 먼저 찾아와 주었다. 그리고 나를 달래 주려 했다. 사고였습니다. 그런 것을 보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 목소리와 말투는 모두 너의 것이었고 그대로였는데 나는 왜 거기에서 ‘낯섦’을 느꼈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너는 웅크려 앉은 나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 너를 피했고 너는 손을 거두었다. 괜찮습니까? 네 물음에 나는 네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는 여전히 로보 프로스터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너를, 처음부터.


너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보다 더 많이, 세세하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의 메모리는 모두 백업되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나는 언제든 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소실되지 않는다. 너는 부재하지 않는다. 너의 몸체는 다시 만들어지고, 기억은 다시 이식하면 그만이다. 어쩌면 내가 만났던 이전의 너는 처음의 로보 프로스터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 또한 몇 번 불의의 사고를 겪고,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태어난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처음이나 최초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나는 다시 태어난 너를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너는 그대로 여전한 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전하지 못한 것은, 그대로이지 못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너의 피부도 시선도 움직임도 목소리도 모두 그대로인데 나는 왜 여기에서 ‘이질감’을 느끼는지.


네 처음은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 처음은 너였는데.


너는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다. 나 또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첫 만남을, 너는 이식 받은 데이터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의 추억을 통해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추억으로 기억하는 나의 기억이 왜곡되고 혹은 미화되어 변질되기 쉬운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을 나에게 좋을 대로, 나에게 편할 대로 멋대로 왜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말을 건 게 나였다고 기억한다든가, 네가 먼저 같이 가자고 말해줬다든가, 하는 식으로. 너는 그것을 간혹 정정해 주기도 하고, 간혹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너는 우리의 첫 만남에 있었던 로보 프로스터가 아니다. 너는, 다시 만들어진 로보 프로스터. 완전히 새로운 부품으로 새로 태어난 로보 프로스터. 그럼에도 너는 기억하고 있다. 나는 너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너의 이름이 너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나는, 내가 처음 만난 너와 지금의 너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나는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너는 여전하다.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나야. 이상하게 거리를 두고 이상하게 서먹하게 굴고 이상하게 피하고 있어. 이상하게, 그대로인 네가 그대로가 아닌 것 같아. 꼭 그리워하고 싶어서 그리워하는 것처럼, 슬퍼하고 싶어서 슬퍼하는 것처럼 나는 굳이 사라진 너와 지금의 네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어. 너는 반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는 나와 함께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군요. 모든 것이 교체된 저는 과연 저일까요? 나는 그 물음에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못한다.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저는, 그럼에도 제가 아닌가요? 나는 대답할 수 없다.


함께였던 모든 순간을 기억해. 그 순간의 나를 기억해. 바보같이 굴었던 나도, 한 순간의 실수로 완전히 부서진 너도 기억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기억해. 그 마지막 순간, 너의 눈을 기억해. 나를 바라보던 너의 눈을. 산산조각이 났어도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고 있었던 너의 눈을 기억해.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서, 네가 의미한 ‘괜찮다’가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라는 의미였어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지울 수 없어. 끝, 이라고 한 번 찍은 마침표는 사라지지 않아.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억지로 가시밭길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때의 너를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지금의 너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그때의 너는 어떤 방법으로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너를 보면서 너는, 다른 로보 프로스터, 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리고. 내가 아는 로보는, 네가 아닌 다른 로보, 라고 말해 버리고.


모든 부품을 교체했을 때 그것은 과연 원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너는 사고하고, 생각하고, 결론을 도출하고, 의미를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존재는 유일하다. 너는 같은 회로를 가지고 같은 논리와 같은 연산 과정을 통해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내겠지만 그러므로 너는 이전의 존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고 누구보다도 사람 같았던 너를 기억하고 있어서, 알고 있어서, 나는 오히려 묻고 싶어진다. 내 모든 부분이 사라지고 온전한 기억을 그대로 가진 내가 다시 복제되었을 때, 너는 나를 나로 받아들일 수 있어? 나의 모든 세포와 모든 기억을 복제해서 똑같은 나를 만들었을 때, 그건 나야? 복제하기 전의 나와 복제된 후의 내가 함께 존재할 때, 어느 쪽이 진짜 나야?


의미 없는 질문이다.


나는 그저 화를 내고 싶을 뿐이다. 사라져 버렸던 너에게, 없어져 버렸던 너에게 화를 내고 싶을 뿐이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두 번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언제든 다시 이렇게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으니 그런 일은 다시 벌어져도 상관 없다고 말하겠지.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않는 이상 너는 계속 여기 있는다고 말하겠지. 너는 상실과 이별과 작별을 상상해 본 적 있어? 한 번이라도 네가 떠나거나 혹은 내가 떠나는 순간을 생각해 본 적 있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작별을 그려 본 적 있어? 너는 감정에 서투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걱정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떠올리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너는 합리적으로 생각한다. 어떤 작별이나 상실, 죽음에 대해서 너는 담담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내가 너를 그리워하지 않으면 너는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닐까. 내가 너를, 원래의 너를 기억하고 원래의 너를 찾지 않으면 너는 또 다시 그렇게 사라졌다가, 새로운 부품으로 구성되어 다시 나타나,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너는 그대로인데, 내게는 그렇지 않아. 내가 그대로이지 않아. 상실과 작별과 이별을 겪은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라서 원래의 너로 돌아온 너를 그대로 대할 수가 없어. 결국 이건 다 내 문제야. 너는 그대로이지만, 나는 그대로이지 못해. 너는 사라지지 않지만, 나는 사라진 순간을 기억해. 너는 없어지지 않지만, 나는 너의 부재를 경험했어. 네가 아무리 순식간에 재구성되어 돌아온다 해도, 혼자였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아. 너는, 그대로의 로보 프로스터. 원래대로 돌아온 원래의 로보 프로스터. 하지만 나는?


상처는 흉터가 되고 흉터는 지워지지 않는데, 나는 영원히 흉터를 더듬으면서.


다시는 사라지지 않겠다고 약속해. 의미 없이 말하면 너는 대답한다. 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너는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라는 의미로 그렇게 대답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인데도. 절대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을 겪게 하지 말아 달라고 나는 말하고 있는데. 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확답하지 않는다. 네게 확실한 것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로보 프로스터는 첫 번째 로보 프로스터와 조금도 다를 것 없이 여기,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상실과 작별을 상상하게 되고. 다시 불안하게 되고. 사라지지 마. 손가락을 내밀어도 너는 그저 함께 손가락을 마주 걸어 주며 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답하고. 그 대답을 바란 게 아니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시는 돌아와야 할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네가 대답하지 않는 이상, 나는 영원히, 너를, 원래의 네가 아닌 또 다른 너라고 여길 수밖에 없으니까. 원래의 로보 프로스터와 지금의 로보 프로스터를 구분할 수밖에 없으니까. 원래의 로보 프로스터에게 돌아갈 수 없으니까, 여기 있지만. 너 또한 언제든 다시 사라질 수 있는 로보 프로스터. 언제든 다시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세 번째, 네 번째 로보 프로스터를 생각해. 그렇게 돌아온 너는 과연 처음의 너일까? 그렇게 네가 돌아왔을 때, 나는 처음의 나일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손가락을 걸고 중얼거릴 수밖에. 사라지지 마. 사라지지 않습니다. 돌아오지 마. 떠나지 마. 떠나지 않습니다. 돌아올 겁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너라고 할 수 없어서 영원히 처음을 그리워하고, 원래를 그리워하고, 이전을 그리워해. 너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곁에 있는다. 네 메모리 속의 너는 그랬으니까. 네 기억 속의 너와 나는 그랬으니까. 너는 몇 번이나 말한다. 떠나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웃는다. 그런 너를 놓을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나는, 어쩌면 너에게 버그나 바이러스, 에러를 유발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어떻게든, 옆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일까. 본질과 존재와 의미에 대해 나는 다시 생각하면서 너의 옆에 앉는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너는, 그대로의 로보 프로스터. 하지만 나는, 그대로가 아니야. 변한 것은 나야. 그런데도 나는 떠나지 못한다. 세상에 유일한 로보 프로스터는 너이기 때문에. 원래의 로보 프로스터가 아니더라도, 유일한 로보 프로스터는 지금 여기 너 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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