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블랑 로란츠. 엔딩로그.
울고 싶을 땐 너를 떠올렸어. 눈을 감고 손 끝으로 느리게 허공을 더듬었어. 그럼 무언가 만져질 듯 잡히지 않았어. 그런 것들만이 의미 있었어.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지만 한참 동안 목놓아 운 기분이 되어서 눈을 떴어. 네가 잔상처럼 스쳐 지나갔어. 그럼 이 곳은 이제 깊은 물 속이야.
어떤 심해에서만 만날 수 있는 너를.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의 행성으로. 그 먼 우주 끝에 있는 우리의 고향으로 이제 돌아간다고 했다. 모든 것이 끝나 버렸고, 지나가 버렸고, 마침내 가라앉았다. 부상을 입은 자들은 응급 조치를 받았고 자잘한 상처들이 몸에 남았다. 굳이 의료실을 찾을 만한 것들은 아니었으나 일손을 돕기 위해 그 곳으로 향했다. 알싸한 소독약 냄새와 부상자들의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비릿함. 그런 것들 사이에서 한참 동안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했다. 몇몇은 돌아가는 것에 기뻐했고 몇몇은 생각보다 이른 귀환에 당황했다. 몇몇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떠들고 있었다. 소란과 고요, 침묵과 언성 속에서 블랑 로란츠는 있었다. 그저, 있었다. 몰려왔던 사람들이 한 차례 빠져나가고 약간의 적막이 찾아올 무렵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그 장소를 벗어났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 공간과 공간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누군가 집에 돌아간다고,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침내 볼 수 있다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블랑은 잠시 그를 눈에 담았다가 고요히 지나쳤다. 한참 동안 걸으니 제법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긴 숨을 뱉을 수 있었다.
블랑 로란츠는 잠시 멈춰 서서 길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는 울었어. 한참 동안 외로웠고. 한참 동안 너를 추억했어. 네가 떠나간 모든 자리에 찾아가 보았어. 너의 흔적을 뒤적거렸어. 만지면 만질수록 흩어지는 모래 같았던 너의 모든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계속 어루만지는 방법밖에 알지 못해 한참 동안 매만졌어. 그게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고, 그건 잘못된 방법이었어. 추억하려면 그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으니까. 닿지 않는 곳에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 너였으니까. 시큼하고 텁텁하고 퍼석한 것. 그게 너를 구성하고 있었던 모든 것이었고 너는 마침내 완전히 아름다워졌지만 네가 남기고 간 것들은 그럴 수 없었지. 네가 나에게 해 주었던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녹음해서 기록해 두었으면 그건 완전한 보존이었을까. 너를 무엇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시스템, 로봇, 안드로이드, 초상화, 일기, 한 장의 사진, 녹음된 음성, 정교하게 빚어낸 인조 피부, 같은 것에 너를 가둬, 내 곁에 두었다면. 그럼 나는 조금 더 오래 너를 추억할 수 있었을까. 조금 더 오래 너를 더듬어 만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곁에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같이 있다고, 함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조금 더 괜찮았을까.
나의 중심에 너를 두지 않고.
지나간 흔적만 뒤집어 더듬지 않고.
외딴 사막에서 거꾸로 걷는 여행자처럼.
스스로의 발자국에 위안 받으며 살아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버려진 것들을 버리는 곳에는 여전히 폐기물이 가득했다. 누군가 잘못해서 망가뜨린 스탠드. 다 쓰인 배터리.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온 표지판. 원래의 형태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것들과 처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것들 사이에서 블랑 로란츠는 멈췄다. 곧 있으면 배출이 시작된다. 눈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한 바퀴를 휘이 둘러본다. 오늘은 이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 없다. 버려진 것을 주워 올 필요도 없다. 남겨진 것을 헤집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우뚝 서서. 한참을 머무를 수 있었다. 악취는 나지 않았다. 이 곳의 폐기물들은 주로 썩지 않는 것들이었다. 약간의 먼지 냄새와 약간의 웅웅거리는 고요한 떨림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블랑 로란츠는 잠시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눈을 내리깐 채 그 무엇도 떠올리지 않으려 해 보았다.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함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시간 동안, 블랑 로란츠는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온전한 혼자가 될 수 없었으므로.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중에서는 제법 웃음이 나는 일도 있었다. 웃을 수 없는 일들도 있었으며, 웃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긴 시간이었지.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블랑 로란츠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우습다. 인간의 뇌를 완벽히 정복했다면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구분은 없었을 테니 아직 우리는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는 셈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어느 부분이 멋대로 마음을 주고, 정을 주고, 시간을 할애하게 만들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는 부질없는 노력은 하지 않았으나 블랑 로란츠는 약간의 아쉬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속상했다. 그건, 속상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 신경을 써도 별 수 없지만, 만약에. 가정을 한다면.
만약 내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면.
때로 그리웠고 때로 미웠으며 때로는 고마웠던, 너는. 나의 악몽이자 희망이었던 너는. 모든 것의 원인이자 이유이자 결과인 너를. 사랑하는 누나, 나는 결코 너를 이해할 수 없겠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오역하고 오독하고 오해한다는 것이니까. 나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어.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었고. 어쩌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너를 잃었기에,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는지도 몰라. 네가 있었으면 나는 조금 더, 말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사이 좋은 남매였잖아. 너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서로의 교우 관계를 상담하고. 어쩌면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너와 함께… 무언가를… 찾거나, 만들거나, 나누었을지도 몰라. 어떤 가정을 해 보는 거야. 네가 있는 나를. 어쩌면 나는 너를 가장 아름답고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옷이나 모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어……. 정말 이 모든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있을 수 없는 일은 없어?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우주에서도, 우리는 결국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잖아.
배출이 시작되었다. 검고 빈 우주로 모든 것이 빠져나갔다. 휩쓸리듯 쓸려나가는 것들을 창 너머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없이 들여다보면 빠져들 것 같은 우주가, 너머에 있었다. 블랑 로란츠는 모든 폐기물이 빠져나가고 문이 닫힌 다음에도 한참 동안 그 곳에 서 있었다. 창에 마르고 흰 손을 가볍게 올려놓은 채로.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입 안으로만 중얼거릴 수 있는 말들을 꺼냈다. 그 모든 말들이 폐기물과 함께 휩쓸려 빠져나가는 상상을 했다. 쏟아내지 못한 것들을 여기에서라도 게워낼 수 있었다면. 버려질 것들 사이에서 비로소 꺼내 놓을 수 있는 내밀한 것들을 모두 토해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마음이 바뀌었을까. 무언가 변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블랑 로란츠는 느리게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텅 빈 복도를 걸었다. 허공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거대한, 진공의, 밀폐된, 곳에서. 그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 거대한 시선으로 보자면 옮겨 간 것도 모를 움직임으로. 느릿하고 차분하게 걸었다. 함선 내부는 이제 익숙하고 친밀해서 눈을 감고도 원하는 지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더뎌지지 않고 느려지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블랑 로란츠는 걸었다.
처음 원정을 나설 때부터 결심한 것이 있었다.
돌아갈 곳은 없었다.
네가 없어서 나는 평생을 방황하게 되었다. 너는 나를 버려 두고 혼자 떠나갔고, 나는 네가 남겨 놓지도 않은 발자취를 더듬어 헤맸지. 너는 지구로 갔을까.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을 지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황폐함이 오히려 너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평생에 걸쳐 너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고, 너는 그럴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고. 그러니 모든 것은 남겨진 자의 자기 만족과 자기 위로 뿐. 이건 스스로를 꿰매 나가는 과정이다. 터진 곳을 메우고, 봉합하고, 단단히 묶어 포장하는 일. 네가 없어서 나는 혼자를 견디는 방법을 알아 가게 되었다. 그 모든 시간이 너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려 애썼지만 알고 있었지. 모를 수 없었지. 외면할 수 없었지. 그렇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그만 둘 수가 없었어. 그게 나의 모든 것이었기에. 나의 전부였기에.
블랑 로란츠는 문을 열었다. 함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상 탈출용 기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것을 움직이면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겠지만, 그것은 아마 자신이 떠나고 난 뒤의 일일 것이니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한 사람이 겨우 탑승할 수 있는 기체 내부는 비좁았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블랑 로란츠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로켓을 만지작거리며 몸을 밀어 넣었다. 식량도, 물도, 무엇 하나 챙길 이유가 없었다. 굶어 죽든 혹은 질식해 죽든 상관 없었다. 우주로 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네가 있는 미지로. 아무것도 없는 그 곳으로. 몇 가지 버튼을 조작하고 레버를 당긴다. 엔진이 작게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점화되고 무릎도 펼 수 없는 운전석에 블랑 로란츠가 있었다. 에일라 로란츠의 마지막 남은 유해와 함께.
모든 것을 정리했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문이 좌우로 열리면서 넓은 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블랑 로란츠는 눈을 감고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짧게 몸이 쏠리는 느낌이 나고 퉁, 하고 함선으로부터 작은 캡슐이 튕겨져 나오듯 빠져나왔다. 비상벨 울리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이대로 너에게 갈게. 이 엔진이 다 할 때까지 곧장 앞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깊숙하게. 멀리 갈게. 그 곳에서 네가 가보지 못한 곳에서 나는 찾을 거야.
무언가를.
눈을 뜨면 우주의 한복판에서 너를 그려낼 수 있다. 블랑 로란츠는 마침내 웃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