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 허블 사무소 소속 스코시즘 로보 프로스터 2차 창작
※ 개인 해석 및 날조
나이를 많이 먹으면, 존재한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나이를 세는 것을 잊어버린다.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나이가 중요해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내가 몇 살인지, 몇 년째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지 헤아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즈음, 그만큼 의미 없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즈음 사람들은 나이를 헤아리지 않게 된다. 대신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해를 말한다. 10년에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10년생이라고 말하고, 20년에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20년생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나이를 물었을 때 올해에서 자신이 태어난 년도의 차이를 헤아리면 금방 나이를 말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냥 즉각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신이 태어난 때를 말한다. 자신이 이 땅 위에 발을 딛고 존재해 온 시간을 외면할 수는 있어도, 모르는 척 할 수는 있어도 태어난 때를 부정할 수는 없다.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은 그토록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일을 기념한다.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날. 아늑하고 포근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無)에서 실재하고 실존하는 세계로 확실한 부피와 무게, 질량을 가지고 존재하게 된 순간. 그 순간을 쫓겨난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무엇도 생각할 필요 없고 그 무엇도 애써 증명할 필요 없었던 혼돈, 없음, 공백, 카오스, 우주에서 질서가 있고 실재하고 존재하고 물질의 형이하학적 세계로 끌려 나온 그 순간을. 영원에서 순간으로, 전체에서 일부로, 모든 것에서 단 하나로 전락한 순간.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 있는 힘껏 울음을 터뜨린다.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동시에 설움을 토해낸다.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날과 비슷하게 기념하는 날이 있다면 이 세상을 떠난 날일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기에 떠난 이는 그 자신의 눈 감은 날을 기념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만이 마침내 그가 자유로워졌음을 축하하며, 그가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라는 사람이 존재했음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한다. 생일이 존재하는 그 주체에게 무척 슬픈 날이라면 기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그가 마침내 자유로워지고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영원으로, 전체로, 우주로, 공백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우리는 생일보다는 기일을 더 축하해야겠지만, 논리적으로 그리고 이 땅의 법칙으로 자신의 기일을 기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대신 생일을 기념한다. 생일을 기억함으로써 기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헤아리며,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그 때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그래서 얼마나 기일이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기념한다.
나는 나의 나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헤아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사실은 오늘이 며칠인지도, 계절이 어느 계절인지도, 몇 번째 해인지도 잘 모르겠다. 해가 뜨고 낮이 되어 시간이 흐르면 달이 뜨고 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패턴에 맞추어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나 일어난 다음 밤이 오면 눈을 감고 다시 잠드는 생활 습관을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 오늘이라는 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날이다.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날 중 하루일 뿐이기에, 그런 하루가 몇백 개든 몇천 개든 단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계절이 지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일어나면 가장 먼저 너의 상태를 확인한다. 네 표면 위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얼룩이 있으면 문질러 닦아낸다. 너의 관절이 잘 움직이는지 부드러운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약간 손을 본다. 네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부품들이 전부 잘 있는지 잘 작동하는지 언제든지 잘 기능할 수 있는지를 살피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너는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기에 같은 자세로 오래 있어도 살이 문드러지거나 피가 괴어 썩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이리저리 뒤척이도록 움직인다. 언제든 네가 눈을 떴을 때 불편함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부분이 잘 움직이는지 확인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리고 내가 만져서 움직였을 때 크게 이상이 느껴지지 않지만 만약 네가 눈을 떴을 때 너 스스로 너를 움직이고자 한다면 그때는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수리 도구와 물품들을 갖춰 두었다. 가장 좋은 것은, 그것들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 부질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너는 변하지 않는 사진처럼 눈을 감고 잠들어 있고, 나는 내가 태어난 때 대신 네가 눈을 감은 때를 기억하고 헤아린다. 네가 눈을 감고 잠들어 버린 게 언제였는지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다만 지금이 그때로부터 몇 번째 해인지, 몇 번이나 네 개의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뀌었는지를 알지 못해서 우리가 벌써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는지를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다. 누군가 와서 너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있어도 네가 잠들어버린 그 때가 몇 년 전인지 혹은 몇십 년 전인지, 몇백 년 전인지를 말할 수 없다. 그게 특별히 곤란한 일은 아니다. 말했듯이, 의미 없는 하루가 수십 억 개로 늘어난다 해도 그것은 결국 하루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다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것은 확실하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나는 네 안에 있는 데이터가, 메모리가, 기억이, 추억이, 함께 했던 시간이 모두 휘발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너의 기일을 기념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너와 함께 했던 추억을, 시간을, 기억을 돌이켜 떠올리는 것도 남겨진 나의 일이지만 나는 사실 너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서 계속 네 곁에 머무르면서 네 부품을 확인하고, 잘 동작할지 걱정하고, 너의 데이터를 염려한다.
어떻게 보자면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있어 주었던 너는 눈을 감고 잠들었으니, 그 날을 기일이라고 친다면, 다시 눈을 뜬 너는 그 순간을 생일로 쳐야 할 것이고, 생일은 곧 태어난 날이므로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은 모두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탄생 이전의 기억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갓난아기들이 태어날 때, 아기들은 모두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 천사가 입을 맞춰 주고 전생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고 한다. 천사의 입맞춤은 코와 입술 사이, 인중으로 남는다고 한다. 너는 갓난아기가 아니고 이 세상에 천사는 없어서 다시 태어나는 네 전생의 기억을 가져가 버릴 천사의 입맞춤은 있을 수 없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재탄생이니. 전생의 기억이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눈을 떠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나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너의 나이를 알고, 너의 취향을 알고 있다. 네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고, 네가 어떤 목소리로 어떤 말투를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너는 내가 기억하는 너와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너는 너 자신의 이름을 새로운, 다른 이름으로 가지고 싶어할 수 있고, 다시 태어났으니 한 살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테고,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목소리와 성격과 말투도 모두 바뀌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너는 너일까?
너를 여전히 너로 대하는 것은 실례일까? 어쩌면 너는 다시 이 땅 위에 존재하게 된 것을 슬퍼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무한한 존재에서 유한한 존재로 격하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무한하고, 광활하고, 장대하다. 지금의 너는 영원이고 우주이며 전부이다. 하지만 눈을 뜨는 순간 너는 여기 이 존재에 국한되어 버린다. 이름을 가지게 되고 부피와 질량과 무게를 가지게 되어 물리적으로 상처 입고 훼손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다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니까.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니까.
생일은, 태어난 날은. 그러니까 사실 그렇게까지 기념할 만한 날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날을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날이 아닌 우리가 만난 날로써 축하하고 싶다.
우리가 영원이었다면, 저 무한한 우주에서 비존재로 공허했다면, 그래서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고 타인과 자신을 구분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우리가 만나기 위해서는 너와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고 우리가 각각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고 있어야 하며 이 땅, 이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존재해야 한다. 무한하고 광활하고 장대한 영원에서, 그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흐름에서, 단 한 순간, 찰나, 점보다 더 작은 점에 불과한 순간 우리는 만났다. 나는 그 만남을 기념하고 싶다. 그 만남을 축하하고, 기뻐하고 싶다. 누군가는 그러한 만남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우연과 우연,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와 또 다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만나 빚어낸 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우리는 만났으니까.
그래서, 아직 잠들어 있는 너의 곁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다. 네가 눈을 뜨는 그 순간을, 그리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을. 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건네는 인사는 무엇일까.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수없이 많은 인사가 있겠지만 네가 나를 기억하는지 못 하는지에 따라 더 많은 인사말이 있겠지만 내가 너에게 건넬 인사는 이미 정해져 있다. 고마워, 반가워,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힘들었어, 그 모든 감정을 뭉뚱그리고 하나로 뭉개어 나는 우리가 만난 것을 축하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할 말은. 하고 싶은 말은.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