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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By 민트박하 | 2026.05.14 14:09









스코시즘 전력 60분 제 3회 

주제 : 개화











벚꽃의 개화 날짜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3월에서 4월 사이, 봄철이며 벚꽃과 함께 다른 봄꽃들도 잔뜩 피어나 따사로운 날이 왔음을,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났음을 알린다. 3월은 절기로 경칩과 춘분이 있고 4월은 청명과 곡우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것들이 모두 깨어나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때라고 한다.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로 봄이 스쳐 지나가듯 살짝 맛만 보여 주고 사라지는가 하면 꽃샘추위 답지 않은 꽃샘추위로 4월에도 눈이 내리기도 하니까. 기껏 피어난 꽃들은 갑작스럽게 다시 닥쳐 오는 추위에 얼어붙기도 하고, 일찍 져 버리기도 한다.


옛날에는 꽃구경이라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꽃나무에 봄꽃들이 만발한 때 화창한 날을 골라 가족끼리, 친구끼리 볕 좋은 곳에서 꽃을 구경하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것도 먹고, 느긋하게 낮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게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계절이라는 게 뭔지,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거나 엄청나게 눈이 퍼부어대는 날 뿐이라서 꽃이 피기도 어렵고 피었다 하더라도 금방 꽃잎이 떨어져 바닥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특히, 목련이라는 것은 어쩌자고 그렇게 나약하고 여린지 모르겠다. 벚꽃과 비슷한 시기에 혹은 조금 더 이른 시기에 피어나는 목련은 보통 흰 색이며 너무나, 흰 색이기 때문에 꽃이 지고 꽃잎이 바닥에 떨어지면 지나치게 지저분하고 볼썽사납게 더럽혀진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목련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목련을 좋아한다. 아주 찰나의 순간만 기적처럼 만날 수 있는 목련은 예전에도 일부러 찾아 보지 않으면 예쁘게 핀 모습을 보기 드물었지만 지금은 더욱 희귀한 장면이 되었다.


나는 목련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한다. 아니…… 역시 좋아할 수 없다. 목련이 피는 순간 벌써부터 허무하게 꽃잎이 떨어지고 나무 줄기 아래 뿌리 근처에 지저분하게 떨어져 나뒹구는 회색, 갈색, 검은색으로 더러운 꽃잎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더러워질 줄 알았으면 너희들은 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더 아득바득 나뭇가지에 붙어 있으려고 노력했을까. 얼마나 더 애를 쓰고 기를 쓰든,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장면은 아주 찰나에 불과하고 나는 그 찰나를 위해 기나긴 겨울을 참아내고 견뎌오는 목련이 싫다. 고작, 그렇게 피어나서 그렇게 지려고 견뎌 온 거냐고. 좀 더 힘을 내서 좀 더 오래 붙어 있어 보라고. 좀 더 예쁘게 피어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고 따지고 싶다. 목련은 비참하다. 그리고 슬프다. 비슷한 시기에 피는 벚꽃은 아름답게 피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그 벚꽃의 자태와 향기를 찬미하는 노래도 많은데, 목련은 어째 슬픈 시가 더 많은 것 같다.


목련이.


너는 목련 나무 아래 서 있었다. 키가 큰 네 머리는 가장 낮은 목련 꽃과 그리 멀지 않았고 손을 뻗으면 쉽게 그 꽃을 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너는 운 좋게도 활짝 피어 있는 목련을 발견해 그 아래에 서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네 검은색 일색인 모습과 목련은 무척 대조적이라서, 그 순간에도 피어난 채로 지고 있는 목련 꽃잎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지면 그렇게 대조적일 수가 없었다. 너는 크고, 단단하고, 곧게 서 있었고 목련 꽃잎은 작고 여리고 가냘프게 떨어지고 있었다.


너는 그 자리에 꽤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너의 머리 위나 어깨에 목련 꽃잎이 한두 장 떨어져 있었고 발치에도 꽤 많은 꽃잎이 쌓여 있었지만 네 발 아래에는 꽃잎이 없었다. 네가 일부러 그런 곳을 골라서 서 있는 건지, 아니면 바닥에서 나뒹구는 꽃잎들을 살며시 쓸어내고 그 자리에 섰는지는 모르겠다. 너는 조금 고개를 젖힌 채 목련 꽃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처연한 꽃을 보며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내 생각에 너는 겨울의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봄과 꽤 닮았다. 네 연두색 눈동자가 특히 그렇고, 아직 제대로 날이 따스해지지 않은 초봄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러니까 딱 이렇게 봄 꽃들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미는 시기가 딱 너와 잘 어울리는 때라고 생각한다. 아직 연못의 얼음은 다 사라지지 않았고 새벽에는 땅 위에 서리가 옅게 얼어붙는데 해가 높게 떠오르면 그래도 날이 누그러진 바람과 조금 더 환하고 따스해진 햇빛을 쬐며, 아, 겨울이 끝나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그 때가 너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목련 나무 아래 서 있는 너는, 마치 누가 그곳에 가져다가 놓은 것처럼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나는 네가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꽃의 여왕, 화려한 장미. 새벽에만 잠깐 피었다가 금방 눈을 감는 나팔꽃. 네 이름과 비슷하게 눈송이처럼 부스스한 안개꽃. 튤립과 수련, 리시안셔스와 백합. 수국, 국화, 라벤더……. 네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목련과 꽤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알겠다. 나는 목련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할 수가 없다. 너무 쉽게 스러지고 너무 쉽게 사라지는, 손바닥에 내려앉은 눈 결정처럼 부질없고 속절없는 꽃. 보도 블럭 사이 사람들의 발길에 짓뭉개진 꽃잎이 으스러진 장면이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꽃이라면, 꽃으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향긋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고 싶을 텐데. 이렇게 길바닥에서 나뒹굴면서 더럽다고 눈총을 받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차라리 장미나 튤립처럼 짙은 색이라도 가졌다면 덜 처참했을 텐데.


목련과 함께 있는 너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상상 속에서 목련은 환하고 탐스럽게 피어 네 머리 위에서 혹은 어깨 근처에서 흔들리고 있다. 초봄과 잘 어울리는 너는 봄에 피는 꽃들 중에서도 목련과 무척 잘 어울리고 나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목련을 좋아할 수 없지만 너와 함께 핀 목련은 영원히 시들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네가 목련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네가 목련을 닮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목련의 그 슬픈 특징들은 너와 매칭되지 않으니까. 너는 목련과 달리 굳고, 단단하고, 곧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목련과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목련이 가지지 못한 것을 너는 가지고 있고, 그래서 떨어지는 꽃잎을 허공에서 손으로 잡아낼 수 있으니까. 그 꽃잎이 영원히 땅에 닿지 않도록, 더럽혀지지 않도록 손에 쥐고 있을 수 있으니까. 찰나의 꽃잎과 영원할 수 있는 너는 그래서 조합이 나쁘지 않다.


너는 손바닥에 있는 목련 꽃잎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후, 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그것이 다른 꽃잎들과 함께 흩날리도록 만든다. 허공을 나풀거리며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목련 꽃잎 위로 다른 꽃잎이 쌓인다. 너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래서 아직 밟히지 않은 목련 꽃잎들은 너의 발치에서 하얗게 소복하다.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나는 좋아할 수 없는 목련을 너는 좋아했으면 좋겠다. 좋아하지 못한다면 가엾게 여겨 주면 좋겠다. 소중히 여기지는 않아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면 네 옆에 핀 목련은 아마 다른 곳에 핀 목련보다 좀 더 오래, 많이, 하얗게 피어 있을 것 같다. 너는 꽃을 방해하지 않고 꽃도 너를 방해하지 않으니 나는 목련 꽃에 파묻히다시피 한 너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눈처럼 소복히 쌓여 있는, 덩어리째 뚝뚝 떨어지는 동백과 달리 꽃잎이 한 장 한 장 떨어져 바닥에 새로운 꽃을 그리는 꽃잎 위로 네가 누워 있는 모습은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장면이다. 목련 꽃 향기가 백합처럼 짙었다면 너는 질색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쁘게 벗어나겠지. 다행히 목련 꽃 향기는 그리 진하지 않다. 그 성정만큼이나 여리고 옅은 향기.


꽃이 피기 전 꽃망울의 연두색을 닮은 네 눈으로, 목련이 피어나는 모습을 그리고 순간을 지나 시드는 모습을 담아 주면 좋겠다. 올해의 꽃은 내년에 돌아오지 않고 백 일 동안 붉은 꽃은 없다지만 꽃구경을 가서 기억에 담은 꽃은 추억과 함께 영원할 수 있을 테니 네 메모리에 화사하게 피어난 목련의 찰나를 담아 주면 좋겠다. 아주 먼 미래에, 더 이상 날씨를 버티지 못한 꽃나무가 모조리 죽어 버리고 봄꽃이라는 단어도 완전히 사라져 아무도 벚꽃과 목련, 개나리와 진달래를 구분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봄이라는 계절이 사라지고 꽃이라는 단어가 사라져서 봄이 와도 알지 못하고 꽃이 펴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때. 


네가 목련을 피워 주면 좋겠다. 하얗게, 탐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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