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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홍을

For. 레이 미나

By 민트박하 | 2026.06.1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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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이 선명할 수 있는 까닭은 감정이 뿌리 깊게 박혔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킨 눈물을 모아 이 사막을 모두 적실 수 있으리라.

  백 년에 한 번 비가 내리면 이 모든 모래 위로 꽃이 핀다는 사실을 들은 적 있는가. 말라붙은 강바닥 위로 세찬 물줄기가 흐르고 선인장이 꽃을 피우며 뱀이 머리를 꼿꼿하게 처들고 물을 마시는 장면을, 상상한 적 있는가.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은 모래를 쇳덩이처럼 달궜고 차가운 밤에는 달빛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걷다가 달리다가 때로는 멈추어 오아시스 곁에 자란 야자나무 아래에서 눈을 붙였고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밤에 다시 달리면서 하염없이 달렸다. 해가 뜨면 우리는 숨을 곳을 찾아야 했고 창백한 달이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의 끝자락에서 살며시 인사를 건넬 때, 그때가 바로 우리가 눈을 뜨고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 언제든, 손은 놓지 않았다. 마치 이 손을 놓치면 다시는 잡을 수 없을 것처럼 절박하게 움켜쥐어 매달렸고 얼마 남지 않은 물방울을 나누어 마시면서 뜨겁게 데워진 공기로 호흡했다. 사막은 넓었다. 돌아보면 우리의 발자국은 이미 모래바람에 쓸려 흔적도 없었다. 돌아갈 곳은 없었다. 나아갈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가 목적지를 명확히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끝없이 나아가면서도 낙원을 감히 꿈꾸지는 않았다.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악몽의 무저갱을 향해 제 발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지 않았으며 그 어떤 이도 세계를 구하라 말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나아가고 있었다. 꾸준하게 내딛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비록 사토에 덮여 잊히고, 외면되고,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었고 존재하고 있었다. 그날,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가 손을 잡고 문장을 나누어 말했을 때부터 우리는 함께였다.

  스마트 워치는 정확한 지도와 경로를 그려 주었고 우리는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정부군도, 가장 끈질긴 정부군의 추격도 결국은 따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카사블랑카에서 지나치게 멀어질 수 없었으므로 아예 떠나기로 작정한 우리를 적확한 위치에서 붙잡지 못했을 때, 그들의 패배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임계점을 넘어 더 이상 추격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그저 불을 피워 두고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마주 웅크려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아득한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가득했고 너는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를 그렸다. 어떤 구전은 기록보다 강력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머리카락 자리와 궁수자리, 왕관자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사방이 바다로 가득했던 섬에서의 추억을 어렴풋하게 떠올렸다. 기억해?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몰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갔던 날을. 기억해? 우리가 헤어지게 되었던 날, 나는 우는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결국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너는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돌아가야 했지. 기억해? 어떤 기억은 허물어지고 어떤 기억은 송곳처럼 선명해서 우리는 서로의 송곳으로 서로의 폐허를 찔러 새겼다. 다시는 잊지 말자고.

  너는 내일이면 도착할 거라고 알려주었다. 우리의 긴 도피행이, 마침내 끝을 볼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고 우리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뜻이었으며 또 다시, 전장으로, 그들의 이념과 신념 사이에서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불태우며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테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든 해야 할 일을 할 테다. 우리가 가져온 심장은 아직도 붉은 피를 뿜어내고 우리가 망가뜨린 모든 것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가 아직도 봉화처럼 연기를 피워 오르고 있을 때였다. 시발탄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동시에 끝을 알리는 탄환이었고 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물방울이자 비를 부르는 첫 번째 물방울이었으며 폭풍을 부르는 나비의 날갯짓인 동시에 가장 거세게 타오르는 화염이었다. 우리는 그 자체로 불꽃이었다.

  나는 그날 밤에 잠들지 못했다.

  동이 트면 우리는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된다. 카사블랑카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정식 각성자 페어였던 우리는 언약을 넘어 각인으로 이어졌고 우리의 영혼은 맞닿아 연결됐다. 이제 나는 네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호흡할 수 없다. 네가 없는 지옥과 네가 있는 악몽의 사이에서 나는 불꽃으로 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던 너의 말은 나의 말이기도 했다. 네가 없는 곳이 곧 지옥의 가장 아래층이었고 네가 있는 악몽은 지난 4년으로 충분히 겪었다. 다시는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없을 테다. 나는 너를 붙잡아야 했다. 비록 네가 다시는 나를 떠나지 않겠다 맹세해도 나는 보다 확실한 우리의 연결이 필요했다. 의심해서, 불안해서가 아니었다. 세상에 설명하기에 그것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모든 타인에게 우리의 관계를 전부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의 연결을, 우리의 엮임을, 우리의 맹세를 전부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들이 아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겠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또 다른 사랑 따위는 내게 없을 거라고 나는 알 수 있었다. 너와 함께 헤아렸던 은빛 노을숨꽃을, 그 여름의 후덥지근하면서도 달큰한 공기와 함께 나누어 먹었던 맛없는 맥주와 이를 깨트릴 것처럼 딱딱했던 탕후루 따위를 나는 선명히 기억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또렷한 것은 너의 눈이었다. 네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잊어야만 했다. 오직 너를 바라보며, 너를 마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곁에는 네가 있어야 한다고. 내가 반드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네가 있어야 하고 네가 반드시 웃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찾은 은빛 노을숨꽃이 한아름 가득 네 품에 안겼을 때 그리고 그 꽃을 반씩 나누어 키우기로 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만약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다른 사랑은 내게 없을 것이다. 네가 떠난 그때 나는 나의 일부가 도려져 너와 함께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뒤꿈치를 자르고 떠나는 심정으로 달려나갔을 너의 뒤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발가락이 죄다 잘려 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도저히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한 걸음. 그때, 내가 너를 따라 함께 달아났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무엇이 같았을까. 우리의 이별이 재회를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두 번 다시 너와 재회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시는 이별하고 싶지 않다. 심장에 날카로운 케이블을 꽂을 때 내가 간절히 바란 것은 네가, 케이블을 꽂은 곳이 심장이 아니었기를 바랐다. 나의 심장에서 갈취당한 모든 것이 너를 살리기를 바랐다. 너도 그런 심정으로 심장에 케이블을 꽂았을 거라고, 나는 조금 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함께 심장을 겨누었고 가장 신선한 붉음을 흘렸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손을 잡았다. 우리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아니었으므로 누가 뒤서거나 앞서거나 할 것 없이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달렸다.

  그 누구도 아무도 우리에게 무엇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사막에 핀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선인장이 피워낸 분홍빛 꽃은 아무리 초라해도 아름답다. 피어날 수 없는 곳에서 기어이 피어난 꽃이기 때문이다. 그 꽃잎이 분홍색이라는 것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나는 모든 분홍을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리기 때문에.

  한 송이 한 송이 씨앗을 손으로 심는 것처럼 모래알 하나 하나에 싹을 틔웠다. 내가 피우고 싶었던 꽃은 그 희귀하다던 은빛 꽃이었으나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능력의 밖이었다. 내가 흉내낼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그 타오르던 여름의 노을이 온 세상을 적셨을 때 함께 불타던 너의 눈동자와 두 뺨, 그것을 닮은 꽃잎들, 바람에 흩날린다. 모래 섞인 바람이 제아무리 불어도 꽃잎은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는 꽃잎이 다시 싹을 틔워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너를 위해 흐드러지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그 노을숨꽃 가득 피어난 사막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너를 올려다보며 그 꽃잎 사이에 앉아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키우기로 했던 은색 노을숨꽃을 기억하는지. 더 잘 키워낸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던 것을 너는 아직 기억하는지. 새삼스럽게 웃는다. 어쩌면 수줍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과 마음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웠기에.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씹어 삼키는 게 더 익숙했기에. 그럼에도 발설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밀이 있고 고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백이 있으며 토해내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이 있다. 혓바닥 위에서 꽃잎이 뭉개진다. 사방을 물들이는 주황빛 노을에서 나는 너의 손을 잡고 기어이 속삭이고 만다.


  “사랑해.”


  까마득히 올려다보는 너는 쏟아지는 별을 뒤로 하고 나를 내려다보며 창백한 뺨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나는 감히 영원을 약속하지는 않을 테다. 다만 내가 숨 쉬는 동안, 내가 살아 모든 것을 증명하고 발언하며 전승하고 연결하는 모든 순간, 내 모든 호흡에는 너의 숨결이 스며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때, 우리가 잡았던 손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함께 마주 손을 잡은 채 갇힌 심장을 꺼내고 기형적으로 자라나던 생명을 끊으며 그 모든 죄악을 대속하고 모든 안녕과 평안을 박차고 요람에서 뛰쳐나와 이 드넓은 모래 사막으로 뛰어들었을 때처럼.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던 너의 눈을 나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꿈을 꾸었다.


  “내가 네 것이 되게 해 줘.”


  그리하여 이것을 통속적인 말로 사랑이라 명명하라.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으므로, 지금의 명명은 아무래도 좋다. 친우, 파트너, 동료, 연인, 연모와 경외, 감읍하고 감격하여 복종하거나 숭배하는 그 무엇이라도 상관 없으니 그저 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 주기를. 나는 감히 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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