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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킬러, 약점, 노인, 살인
    2026-03-05

    파과

    5
    완독일 2026-03-05
    키워드 킬러, 약점, 노인, 살인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작가 구병모

    리뷰


    읽은지 꽤 됐는데 기록을 까먹었었다.

    오랜만에 읽은 구병모 작가의 책. 여전히 좋았고, 여전히 신선했다. 생소한 단어들을 많이 써서 신기한 작가 중 한 명.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싶다.

    매력적인 킬러와 그보다 젊은 킬러의 이야기. 청부살인업자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 칼이 무뎌진, 혹은 마음이 생긴. 그래서 더 인간적인.

    사람을 죽여 온 사람이 갑자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기를 계속 바라게 되는 이야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겠지만 청부살인업자는 이미 죽음에 너무 가깝다.

    그리고 이 업계에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실력이 대단함과 동시에 빨리 은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실력으로 증명하면 나이가 많다는 단점을 커버할 수 있긴 하지만

    실력을 녹슬게 한 것은 나이보다는, 마음.

    권선징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남은 사람.


    당장 수상한 사람에게 경동맥이 베일 위기에서 이런 친절하고 다정하며 헌신적인 말투라니.

    조각은 최소한 신뢰를 잃은 채로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은 이 일에 애정이 있었는데, 대놓고 애정이라고 하기엔 이 일의 성격상 좀 뜨악한 표현이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데 대한 집념이나 원년 멤버로서의 집착 내지는 나 아니면 할 수 없단 식의 고집이라고 부르기에도 적절치 않은, 말하자면 탯줄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그것도 간신히 영양을 공급하다 불현듯 아이의 목을 단단히 감아버린 탯줄로, 언제 죽음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입안에 도는 감미, 아리도록 달콤하며 질척거리는 넥타의 냄새야말로 심장에 가둔 비밀의 본질이다. 우듬지 끝자락에 잘 띄지 않으나 어느새 새로 돋아난 속잎 같은 마음의.

    파멸할 때는 사이좋게 손 잡고 지옥으로 떨어져야지 아무렴.

    하나하나 뽑아서 손가락 끝마다 꽃잎이 피어나면 좀 더 예뻐지겠지. 화려해지겠지. 핏빛보다 고운 빨강, 세상에 다시 없으니. 비록 공기에 닿자 거무칙칙해지더라도, 더러워지기에 오히려 깊고 잔혹한 빨강.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은 기억과 호환되지 않는 현재였고 상상에 호응하지 않는 실재였으며, 영원히 괄호나 부재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감촉이었다.

    이거 소질 있네.

    그랬는데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그중 하나는 지금껏 골몰해온 대로 늑골을 다 열어 심장을 꺼내보기 전에는 그 심리를 알지 못할 투우-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묘한 방해 공작에 대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조금 편찮은 정도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장 박사에 대한 안쓰러움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그 느낌은 리어카 노인을 거들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그렸으며, 서로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을 포함하고 있었다.

    "근데 자격은 없지."

    그러나 이 마음은 어디에도 파종할 수 없이 차가운 자갈 위에서 말라비틀어져 마땅할 터였다.

    나를 떼어 보내고 당신 혼자 죽을 작정이라면 차라리 끝까지 함께 가서 지옥에 나란히 떨어지기로. 어차피 우리 모두 조와 아기가 있는 곳에 가기는 글렀으니.

    "그렇게 되면."

    당신을 따라갈까요.

    "너도 나도, 지켜야 할 건 이제 만들지 말자."

    미안합니다. 그건 나 때문입니다. 내 눈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 눈으로 심장을 흘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하나의 존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혼이라는 게 빠져나갔는데도 육신이 더 무거워진다는 것은.

    단지 동전이 바닥났을 뿐인데 조각은 지금껏 형태를 유지해온 자신의 남루한 삶 전체를 비워나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서 미뤄왔지만 이제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가는 일을 더이상 늦출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어떤 심장의 소용돌이들.

    "네가 바로 그 애구나."

    "정말, 기억해?"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 죽은 자로 하여금 (읽는 중)

    출판사 현대문학
    작가 편혜영

    리뷰


    읽는 중.


    의료… 간병에 대한 건가?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묵직하고… 음산하다기보다는 뭐랄까, 음울한 느낌. 

  • 5
    작가, 글, 독자, 살인사건, 추리소설
    2026-05-14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5
    완독일 2026-05-14
    키워드 작가, 글, 독자, 살인사건, 추리소설
    출판사 황금가지
    작가 이영도

    리뷰


    읽을수록 어지럽다. 특유의 설명 안 하고 읽으면서 이해하게 하는 서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래서 이게뭔데 싶어짐. 그래도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된다. 범인이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역시 이영도를 좋아하는구나, 싶어짐.
    읽으면서 점점 이해되는 게 좋음. 범인들의 동기가 다 그럴싸하다. 그리고 다들 기가 막힌다. 이영도는 천재이다.
    천재의 글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빠지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천재들이란… 예상했다면 예상했지만 또 예상하지 못했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유거리들을 던지는 방식들이 유쾌하고 우아하고 세련됐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결국 작가와 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와 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역시 천재이기 때문이겠지. 중간중간 들어간 깨알같은 자기 작품 패러디도 웃겼다.
    이영도 세계관을 잘 알고 있다면 더 즐거운 책. 발췌 문장은 나중에 다시 정독하면서 발췌해봐야겠다. 처음 읽을 땐 도대체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 5
    언어, 침묵, 몰락
    2025-06-27

    희랍어 시간

    5
    완독일 2025-06-27
    키워드 언어, 침묵, 몰락
    출판사 문학동네
    작가 한강

    리뷰


    정갈한 언어들이 빚어내는 장면은 고요하면서 격정적이고 단정하면서 맑게 흐른다. 모든 문장이 잘 다듬어져 있고 한 문장 한 문장을 고심해서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정제되고 정갈한 문장들. 희랍어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 아름다운 문자, 죽은 언어, 세련된 문법.
    고요한 언어들이 꼭 노랫말처럼 아름답다.
    두 사람의 궤적이 서서히 겹쳐가는 과정이 두근거린다.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기도 엄청 궁금해지고, 마침내 두 사람이 대화라고 해야 하나... 자신을 표현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순간이 아름답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 들의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접촉.


    아직 세계와 나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당신의 시선이 단지 내 말을 읽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당신에게 입맞추고 싶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 4
    추리, 반전, 미스터리
    2025-06-17

    어두운 범람

    4
    완독일 2025-06-17
    키워드 추리, 반전, 미스터리
    출판사 문학동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

    리뷰


    파격적인 시작, 흥미로운 전개, 깔끔한 마무리. 단편집으로는 꽤 괜찮다. 단편이라서 어쩔 수 없이 마무리가 약간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띠지에 적힌 대로 상쾌할 정도로, 산뜻할 정도로 깔끔한 엔딩. 반전? 이라고 해야 하나 마무리 한 방이 억지스럽지 않고 깨끗하다.
    흥미로운 서술 방식.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산뜻하다. 상쾌할 정도로 진한 검은색 결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괜찮은 복선 회수와 떡밥 회수로 깔끔한 엔딩을 내면서도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네??? 하게 되는, 미스터리의 정석 같은 느낌.


    갇히는 것과 어두운 것은 정말 싫다.
    자살의 이유를 '문학적인 고뇌로 죽었다'라고 하면 그럭저럭 듣기 좋잖아요.
    영혼과 육체를 바치면 보답으로 망각을 주지.


  • 5
    책, 작가, 글
    2025-05-29

    꿈꾸는 책들의 도시

    Die Stadt der Traumenden Bucher
    5
    완독일 2025-05-29
    키워드 책, 작가, 글
    출판사 들녘
    작가 발터 뫼르스

    리뷰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 중 하나. 여전히 너무 재미있다.
    그림자 제왕은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


    미치광이가 되면 사랑하던 망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던가?
    "무시무시한 성에는 어디든 지하실이 있다."
    "어떤 지하실에든 괴물이 살고 있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 3
    사후세계, 천사, 인간
    2025-05-03

    천사들의 제국

    Empire Des Anges
    3
    완독일 2025-05-03
    키워드 사후세계, 천사, 인간
    출판사 열린책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리뷰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다시 읽으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전히 재밌다.
    생각보다 분량이 좀 적은지도. 천사들과 세계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참신하다고 느낀다.
    술술 읽히는 글은 어쩌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었다. 생각보다 짧았던 느낌? 하지만 그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 5
    퇴마, 용기, 선의, 친절
    2025-04-18

    보건교사 안은영

    5
    완독일 2025-04-18
    키워드 퇴마, 용기, 선의, 친절
    출판사 민음사
    작가 정세랑

    리뷰


    인표랑 은영의 관계가 재미있다.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꼭 손을 잡아야 하는 게 좋은 느낌이 든다. 설정이 무척 신기하고 참신한 느낌. 좋은 기운, 누군가의 순수한 바람이나 열망,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쁜 것들을 퇴마한다는 것. 명승지에 가서 충전한다는 것. 장난감 칼이랑 비비탄 총으로 퇴마하는 것. 다 귀엽고 유쾌한 느낌.
    가볍고 밝고 발랄한 느낌이었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염없이 유쾌하다가도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는 아슬한 분위기의 가장자리가 좋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그래도 너무 칙칙하지만은 않다. 칙칙해지지 말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세계는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걸까?
    선하게, 친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악하게, 악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왜 그렇게 살까, 싶기도 하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은 결국 지게 되어 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친절하고 착한 거다. 그 말이 좋다. 우리는 언제나 이길 수 없고, 가끔은 도망쳐야 하지만 결국 이긴다. 사랑과 정성으로.
    둘이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특히 인표가 은영에게 마음 있는데도 계속 눌러 오고 왔던 게 정말 정말 좋았다. 마음이 먼저 생기는 게 남자라서 어정어정 하면서도 멀리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게 좋다... 여자는 관심 없어야 함.

    아아아, 역시 이상한 여자구나.
    고등학생이 벌써 다 큰 것 같지만 그래도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른들을 그만큼 잘 믿기도 힘들다. 믿지 말아야 할 어른들까지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
    해가 져도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아이.
    격하게 몸부림치며 부서지는 죽음도 있는가 하면 정현처럼 비누장미같이 오래 거기 있는 죽음도 있는 것이다.
    속도 없는 젤리피시만 보건실에서 너울거렸다.
    사기라도 좋아. 속고 싶어.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부서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역시 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구해 주러,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러 오지 않는다.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 하는 그런 넌더리야.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마음 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니가 안 만나 줬잖아!"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 5
    괴기, 수수께끼, 일제강점기
    2025-04-07

    적산가옥의 유령

    5
    완독일 2025-04-07
    키워드 괴기, 수수께끼, 일제강점기
    출판사 현대문학
    작가 조예은

    리뷰


    적막하면서도 눅눅한, 음습하고 어두운, 무언가... 한국인의 소설이면서도 소재 때문인지 일본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기분.
    과거와 현재가 기묘하게 이어지는, 어쩌면 현재는 과거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와 약자 사이의 아주 작은 온기는...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장르는 호러이지만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
    괴물은 괴물이 되고 사람은 괴물에게서 사람을 구한다.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공포스럽고 기괴한, 소름끼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닌 애틋함이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그랬구나.

    죽음과 이별이 너무나 태연하게 벌어지는 시기였다.
    "스스로를 탓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
    "자해는 내 취미야."
    죽어가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내가 있을 곳도 있다.
    "목소리를 들려줘."


  • 5
    소외된, 강, 호수, 사랑, 가족
    2025-04-02

    아가미

    5
    완독일 2025-04-02
    키워드 소외된, 강, 호수, 사랑, 가족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
    작가 구병모

    리뷰


    과격하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충격적인 전개와 과하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수려한 묘사와...
    때늦은 사랑은 재앙이다... ...하필 그 시의 제목도 수몰지구다
    세상에 의지할 곳도 믿을 곳도 없는 사람, 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정 붙이고 사랑했던 사람. 몰랐지만 사랑이었고, 이제 와서 알게 되었지만 사랑했었다. 너무 늦게 알아 버려서, 이제 말도 못 하게 되었지만. 만약 그 사람을 다시 찾게 된다면 사랑한다고 꼭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절대로 어디에서 잘못 걸리거나 묻혀 썩어가는 게 아니라 바다에 닿아서 그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계속 물 속을 헤매면서, 결국 그 사람을 찾아내고 물거품이 되더라도 사랑했다는 말을, 꼭 전하면 좋겠다.
    예뻐. 그 말보다 더 나의 존재를 긍정해주는, 살아주었으면 해.


    아무튼 모든 물결치는 소리는 세이렌의 노래라고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좋을 때다…… 불행을 전시하는…….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


  • 5
    선함, 인간본성, 재난, 선의
    2025-04-14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5
    완독일 2025-04-14
    키워드 선함, 인간본성, 재난, 선의
    출판사 문피아
    작가 연산호

    리뷰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 위기 상황, 긴급 상황에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행하는 일은? 단순하게는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동물적 본능이지 사람의 본능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니까.
    하지만 동물은 사람을 배신하지도 않고, 도움을 주는 데에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고양이들을 두고 어디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복합적이고, 이상하고, 다양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밉다.
    어떻게 신해량 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지... 아 존재 안 하지
    캐릭터들이 정말 다양하고 다채롭고 재미있지만... 특히 김재희가 정말 재미있고 흥미롭다. 뭐하는 놈이지 이거.
    신해량도 무현쌤도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혼자서 탈출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할텐데도 그러지 않고... 이 좋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무현쌤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사람은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간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으로, 정신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선의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생물이다. 심해가 아무리 깊고 어두워도... 그래서 무수히 많은 절망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
    모두 다 같이 행복해져서 다행이다.


    "Don't turn into a monster in crisis situation. (그렇게 쉽게 괴물로 살지 말자. 아무리 힘들어도.)"
    남이 웃는 모습은 왜 내가 가진 불안과 우울까지 줄어들게 만드는 걸까. 내가 웃는 것도 아닌데.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선한 행동을 통해 서로를 돌보고 도왔으면 좋겠다.
    나는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
    "이 해저기지에서 선생님이 제일 상냥했어요."
    홀로 기억하는 나만이 당신들의 다른 모습을 안다.
    '나는 직장에 출근할 때마다 죽었다가 퇴근할 때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나는 일일 지저스다.'
    복수는 얼마나 해야지 복수를 끝냈다고 할 수 있을까.
    "남한테 기대서 손쉽게 얻을래요. 어렵고 힘들게 자기 구원하기 싫어요."
    아무 기억도 없이 죽었다 살아나는 다른 사람들조차 잠시나마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데, 날을 거듭할수록 계속해서 쌓여가는 기억과 고통, 슬픔과 좌절들을 내 뇌가 감당할 수 있을까.
    "동행인이 널 죽이지 말자고 하는군. 하지만 난 네가 비협조적으로 굴었으면 좋겠다. 당장 던질 수 있게."
    구원자를 제 손으로 상처 입히고,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매력적이라서 그래요.
    "제 세상은 이미 무너져내린 지 오래라서 말이에요.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세상을 보면 먼지로 만들고 싶거든요."
    "당신이 썩은 동앗줄이라서 잡으면 떨어져 수수밭에 눕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줄줄이 매달릴 거예요."
    "오늘도 힘내자."
    "……인생 한 번 사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상대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신기루를 나 혼자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슬픈데 어쩔 수 없지.
    "슬프고 절망적이었던 과거를 끌어안고 힘겹게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립다.
    보고 싶다.
    거기서 그렇게 죽게 놔두기 싫다.
    나는 이제 심해를 안다.


  • 4
    사랑, 격정, 파멸
    2025-03-19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4
    완독일 2025-03-19
    키워드 사랑, 격정, 파멸
    출판사 (주)미르북 컴퍼니
    작가 에밀리 브론테

    리뷰


    모든 사람들이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소설. 그 중심에 히스클리프가 있다.
    잔인하고 잔혹한 사람. 폭력적이고 복수심에 가득하다. 오직 복수를 위해 증오를 품은 채 기다린 사람.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그 독이 사라지거나 나아지기도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도저히 사랑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악마 같다. 그의 본질은 악일까?
    마치 악마가 데려간 것처럼 눈을 뜬 채로 죽은 그의 마지막은 허무하다. 복수의 끝처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남자가 자신을 괴롭히고 홀대한 모든 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랜 시간 칼날을 갈고 마침내 그 끝을 앞에 두었으나 결국에는 사랑이 그를 파멸시킨다. 복수의 끝이 허무라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그의 오랜 시간에 걸친 복수가 실패했다는 것에 그는 절망으로 죽어 버린 것일까. 어쩌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보고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고는 그때의 열정과 열렬했던 감정, 모든 것을 바쳐도 좋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고 캐서린을 따라 가 버린 것일까.


    그러니까 나는 헤어튼의 모습에서 내 불멸의 사랑, 내 권리를 지키려는 열렬한 노력, 나의 비천했던 시절,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나의 고통 등을 보았던 거야.


  • 4
    술, 상실
    2025-01-30

    안녕 주정뱅이

    4
    완독일 2025-01-30
    키워드 술, 상실
    출판사 창비
    작가 권여선

    리뷰


    우울증 직빵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다. 우울해진다.
    술로 만났다가 술로 헤어지는 사람들. 술을 마시며 떠올리는 사람들과 기억들. 술 때문에 혹은 술 덕분에. 잊어야 하는 현실과 잊고 싶은 현실과 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뒤섞여서 잊어야 하는 것을 잊지 못하고, 잊고 싶은 것은 더욱 선명해지고,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술이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명징하게 만들기도 하고. 술 덕분에, 혹은 술 때문에.


    "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굽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놀란 그녀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온 겁니까?"


  • 3
    금기, 흡혈귀, 사랑
    2025-01-20

    박쥐 각본집

    3
    완독일 2025-01-20
    키워드 금기, 흡혈귀, 사랑
    출판사 그책
    작가 박찬욱, 정서경, 최인

    리뷰


    영화만 봤을 때는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소설을 통해 좀 더 디테일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영화에 나왔던 대사들이 그대로 있어 장면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지만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지 비주얼적인 충격은 영화 쪽이 더 좋았던 것이 약간 아쉬웠다. 라 여사에 대한 심리 묘사라든가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좋았지만 역시... 영화는 책을 읽은 다음 봐야 한다.


    당신을 안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나락으로 내려갈 수는 있어도 높은 곳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