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넋두리,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문장으로, 책으로 옮겨 놓은 느낌. 그러나 놀라운 것은 나는 이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 것 같다. 공명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이것에 대해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공허와 우울과 무의미에 대해서.
모든 세상을 우울하고 칙칙한, 공허하고 침잠한 무채색으로 보는 사람. 이 사람의 공허와 우울과 침몰에 대해 읽고 있다 보면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행복이란 뭘까?
몰락과 침몰. 공허와 권태. 소멸해가는 삶에 대한 지긋지긋한 경멸.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슬픔에 대하여. 그 어떤 언어도 그 어떤 문장도 온전한 감정을 담아낼 수는 없다. 사람은 결국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 개념이 언어가 되는 순간 그것은 가공되어 타인에게 전달된다. 타인은 그것을 다시 재가공하여 받아들인다. 타인의 머릿속에 마침내 닿은 생각과 개념은 나의 것이 아니다. 언어가 한 번, 타인의 세계가 두 번 가공하고 걸러낸 이해. 그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영원히 멀고 나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으며 우리는 간혹 시선이 마주친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운명으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우연이며, 절대로 절대적인 것은 없고, 반드시 정해진 것 또한 없다.
문득 우울해질 때 공허해질 때 집어 들고 한 페이지 대충 펼쳐서 읽기 좋은 책. 사색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항상 그랬듯이 혼자이며, 앞으로도 항상 혼자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나를 옭아매지만, 아무것도 나를 붙들어주지는 못한다.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누군가의 손아귀를 목덜미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그런데 방금 다른 이의 손을 내 목에서 떼어낸 내 손이, 그 해방의 몸짓과 동시에, 내 목에 밧줄을 걸어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벗겨낸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목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나를 교살한다.
신들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의 노예다.
내 삶의 목적은 부패일 것이다.
환상 자체에 내재된 상실, 환상을 갖는다는 것의 무익성, 상실하기 위해 환상을 가져야 한다는 선행피곤, 환상을 가졌다는 사실이 주는 근심, 환상의 종말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환상을 가졌다는 지적인 수치.
마치 온실의 식물처럼, 나는 내 증오를 재배한다. 나는 삶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오직 누군가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이미지를 사랑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상, 즉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미묘한 삶의 유형이다. 영혼의 성분, 꿈의 숨겨진 폐허에서 채취한 약초, 생각의 무덤에서 꺾어온 검은 양귀비꽃, 저승의 강변에서 요란하게 가지를 흔드는 음란한 나무의 길쭉한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감지할 수 있는 우주의 사물은 내가 사랑했던 것의 시체가 된다.
우리는 죽을 수 있다. 사랑하기만 했다면.
긍정이라 불리는 착각, 믿음이라 불리는 질병, 행복이라 불리는 비천함.
몰락은 내 운명이다.
설사 내가 사랑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은 보답받지 못하리라.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즉시, 그 대상은 시들어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내 운명 자체는 크게 치명적이지 않다. 다만 뭐든지 나와 관련되기만 하면 치명적으로 변하는, 이 약점이 문제다.
복음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인간이나 인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사실상 아무도 그들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을 만든 사람은 인간의 영혼에 독을 풀었다.
노멘 에스트 오멘Nomen est omen, 이름은 하나의 징후다.